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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리의 Brunch ]/Nursing in AUS : 간호사 새아리의 이야기

워홀러에서 호주 간호 유학생(EN)이 되기까지 : 호주 생활 4년 동안의발자취 & 타임라인

by 새아리 2023.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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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서큘러 키

조금 있으면 제가 호주에 온 지도 4년이 다 되어갑니다.

저는 2019년 3월, 덥디 더운 날 호주에 왔습니다. 참 설레는 마음으로 호주에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행복했던 그때, 동네를 걸어 다녀도 내가 맡고 있는 공기가 한국공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하던 그때.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이렇게 한국에 오랫동안 못 갈지는 상상도 못 했었죠. 사실 왔을 때부터 대단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책 없이 나는 한국보다는 호주가 맞나 보다, 여기서 살아야겠다 하는 생각은 계속해서 해 왔었습니다. 여기서 만난 한국인들을 보면 계획 하에 아예 유학생으로 오신 분들도 있고, 일을 하다가 조금 더 돈을 벌기 위해 학생비자로 전환하진 분들도 있으며 (영주권 목적보다는 비자 연장의 목적이 더 큰 케이스), 워홀로 왔다가 워홀 비자만 연장해서 머물고 바짝 돈을 벌어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저는 워홀 비자 2년 후에 영주권을 목표로 호주 내에서 공부를 시작한 케이스랍니다. 올해 호주 국경이 열리고 비자 신청 비용이 면제되는 등의 혜택을 나라에서 제공하면서, 요즘 들어 그동안 통 보이지 않던 중국인 유학생들이나 한국인들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여기서 사는 4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을 겪었었는데, 이제 락다운 이후 호주 유입이 다시 많아지기 시작할 테니 호주에 오시려는 분들 (특히 워홀러!)에게 저는 호주에 사는 동안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발자취를 겪었는지 대략적으로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2019년 3월~ 9월: 호주 생활 시작, 투 잡으로 돈 만 열심히 벌었던 첫 6개월

처음 가본 시드니 센트럴 역은 참 크고 예쁘고 바빴다.

저는 한국에서 남초인 전공을 한 지라, 매 학기 장학금을 탔을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지만 (공부를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장학금 타려고 열심히 함) 취업 준비 때가 되니 참 우리 학과는 여자가 불리한 게 맞는구나라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쪽 분야에서 취업을 한다고 해도 내가 맞이하게 될 현실은 나를 옥죄여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럴 바에는 인생에서 단 한 번이라도 후회되지 않을 선택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부랴부랴 졸업을 하고 단번에 호주행을 선택했습니다. 토종 한국인인 덕분에 영어가 부족해 초반에 엄청나게 고생을 많이 했었는데요, 처음 구했던 잡이었던 카페 사장님이 워낙 cranky 했던 탓에 (사람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조금 감정 조절 문제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욕 얻어먹으면서 영어를 못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열심히 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덕분에 경력을 채워 나중에는 다른 바쁜 곳에서도 점점 더 나은 시급을 받으면서 일할 수 있었고요,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일할 때 쓰는 영어에는 익숙해져서 손님들과 짧게 소통하는 정도는 수월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알아듣는 척할 때가 더 많았지만요ㅎㅎ).

저의 첫 워홀 6개월 동안은 오전에는 카페, 저녁에는 한식당 일을 하며 돈을 최대한 많이 모으려고 노력했었어요. 지금 보니까 그때 벌었던 돈을 보면 현재는 시급도 오르고 해서 요즘에는 그 정도는 쉽게 벌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그때는 차도 없고 영어도 못하는 워홀러로써는 최선을 다해 밤낮으로 일해 번 순수 노동의 결과물이었고, 학생으로써 한국에서 벌 수 있는 돈의 세 배는 벌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꽤나 의미가 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보니 타지 생활 하며 누리는 즐거움도 별로 없이 일만 했던 꽤나 힘들고 외로웠던 시간들이었지만, 그래도 미래를 생각하면서 악착같이 하루하루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었어요. 그때의 제가 참 안쓰럽지만, 많이 고맙습니다. 그렇게 산 덕분에 지금 그나마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래에는 워홀러때 썼던 글인데요, 조금 오래되긴 했지만 궁금하시면 한 번 읽어보세요:)

 

#3 6개월 만에 시티에서 20000불 번 후기 - 워홀에 와서 돈을 아주 많이 벌고 싶은 당신이 해야 할

2만 불, 누구에게는 적은 돈일 수 있겠지만 누구에게는 과분한 돈이다. 적어도 그때의 나에게는 귀중한 자본이었다. 적어도 처음 호주에 온 아무것도 모르는 워홀러라고 치면 한 달에 3천 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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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2020년 1월 : 번다버그에서 농장 생활 시작

시티잡을 하다가 6개월 후 농장에 가는 것, 이게 제 원래 호주오기 전의 계획이긴 했는데요. 말씀드렸다시피, 카페에서 일했던 그 시간들이 너무 좋았던 만큼 저는 너무 농장에 가기 싫어졌었어요. 사촌언니랑 같이 사는 것도 좋았고, 커피 만드는 일도 좋았고, 힘들어도 투잡을 하고 통장에 돈이 차곡차곡 모이던 그 시간들이 저는 하루하루 소중하고 좋았거든요. 그래서 아까 언급했던 그 베트남 사장의 꼬임에 넘어가 말도 안 되는 학교에 등록하고 학생비자를 신청할 뻔하기도 했답니다(심지어 제가 왕 싫어하는 요리코스... 지들이 영주권 해결해 줄 것도 아니면서 해결해 줄 것처럼 말했더랍죠). 이제 와서 돌아보니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정신 차리라고 하며 제 뺨을 찰싹찰싹 쳐주고 싶을 정도로 어리석은 생각이었어요. 다행히 저는 저 대신 제 뺨을 말로 때려준 사촌언니 덕분에 팩트 폭행을 씨게 당하고 눈물을 머금으며 농장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도 혼자는 가기가 무서워서, 원래라면 6개월 뒤에나 호주에 오기로 계획되어 있던 동생을 급하게 불렀어요. 가기 전에 검색을 많이 해봤는데, 저희처럼 차가 없는 한국인들은 사실 한인 농장을 컨택해 안정적인 시프트를 받는게 더 현명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딱히 뭐 별 다른 선택지도 없었어요. 그래서 한국인들 많이 간다는 돈 못번다버그에 가서 지옥행 열차를 스스로 끊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늬들이 농장을 아니

생각보다 농장일은 고됐고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불안정한 시프트였습니다. 그 해가 호주 전지역에 가뭄이 들어 수확물이 적은 해였거든요 (바로 그 유명한 호주 산불이 전국적으로 일었던 해였어요). 인종차별이 판치고 Bogan(호주 양아치들, 교육 수준이 낮고 루즈한 경향이 있음, 맨 발로 종종 돌아다님)들이 넘쳐나는 번다버그라는 도시는 저와 제 동생에게는 1초라도 더 머물고 싶지 않은 곳이었는데요, 모든 작물이 전체적으로 흉작이라 넘치는 워홀러들의 시프트를 아무도 보장해 줄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아무 할 일 없이 숙소에 하루 종일 있었던 날들이 많아지자, 동생과 저는 백패커스를 옮겼고 5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4 곳의 다른 농장 잡을 체험(^_^)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 이곳을 탈출할 수 있을까 하는 심정으로 매일 같이 일한 날짜를 계산했어요. 당연히 일을 못 한 만큼 통장 잔고도 가벼워졌습니다. 외부적 환경이 이렇다 보니, 평생 별로 싸울 일 없이 살던 동생과도 세상 예민함에 다툼이 잦아졌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제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도 동생이랑은 농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할 때면 PTSD가 올 것 같다고 하면서 그때 자주 듣던 노래도 잘 안 듣습니다 ㅋㅋㅋㅋㅋㅋ

 

(만약 지금 농장에 가실 분들이 계시다면, 무조건 차를 가지고 가세요. 오지잡을 가던, 한인 잡을 가던 여러모로 이득 보는 방법 중 하나이고, 이왕 갈 거면 오 지잡을 컨택하시길 바랍니다. 한인 농장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국인 사장님들이 한국인들을 그저 돈 벌 수단으로 보고, 정말 안 좋은 컨디션의 백패커스 방값도 픽업을 해준다는 명목하에 명당 200불을 넘게 받습니다. 경험 없고 차 없는 순진한 워홀러들은 한정된 선택지 속에서 그저 착취당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저도 그중 한 명이었던 ^_^ 나중에 코로나 터지고는 일 손이 없어서 방 값도 적게 받고 임금도 올려줬다고 하죠.....ㅎㅎ 망할)

캔버라에 살면서 처음 가본 작년 2022 플로리아드. 2019년에는 농장에 가느라, 2020년과 21년은 코로나 때문에 방문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2020년 2월 ~ 2020년 4월 : 캔버라에 돌아왔지만,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어찌어찌 그렇게 농장에서의 88일을 채우고 캔버라에 돌아와 세컨비자를 신청했어요. 하지만 금방 터진 코로나는 꽤나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때가 처음 코로나가 터졌을 때라, 호주가 자국민만 챙겼을 뿐 외국인에 대한 지원은 전혀 하지 않았거든요. 이때 워홀을 왔다가 돈을 벌지 못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수두룩 했고, 이런 호주정부의 대처에 실망감을 느낀 많은 각국의 유학생들도 영주권 취득을 포기하고 자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돌아갈 수 없었어요. 돌아가는 건 옵션에도 없었고요. 다행히 그때 일하던 한식당에 친구의 추천으로 고용되었고, 덕분에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렌트비 낼 정도의 수입은 유지할 수 있었어요. 감사한 상황이긴 했지만, 일자리가 부족한 와중에 받은 정말 소중했던 일자리라 키친핸드부터 시작해 온갖 잡다한 일을 다 해야 했습니다. 식당에서 약 1.5년을 일하면서 쿡, 홀 직원, 매니저 역할을 다 해보았고, 온갖 마음고생과 몸고생은 다 했지만 그때는 또 이 일 말고는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간에 매주 나가는 렌트비라도 꾸준히 벌어야 했으니까요. 제 동생은 호텔에서 하우스 키핑 잡을 하다가 코로나가 터지면서 함께 일하던 직원들과 함께 정리해고가 되었는데, 그걸 생각하면 정말 지금 있는 잡이라도 꼭 쥐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동생은 한 달 이상을 쉬다가 결국 페인터 잡을 구했고, 그게 동생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어 지금까지도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만,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모두에게 어려운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동생을 두고 혼자 일하러 가는 게 참 미안하고 안타까웠어요. 정말이지 막막하고 암담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20년 5월 ~ 2021년 4월 : 한식당에서 버티고 버텨야만 했던 나날들

그렇게 시작했던 한식당 일도 정말이지 도전과도 같았습니다. Dine in 손님을 받을 수 없었기에, 배달 주문을 타깃으로 한 음식을 만들어 홍보를 했고, 저는 그 홍보물을 만드는 일과 홍보하는 일, 손님에게 주문을 받는 일과 음식을 포장하는 일 전부를 다 해야 했거든요. 사실 그렇게 열심히 일 한 덕분인지, 손님 입장 제한이 풀리고 난 5월부터는 정말 손님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예전과는 다르게 장사가 잘 되기 시작했어요.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도 장사가 그렇게 잘 되는 편이 아닌 식당이었거든요. 요리사 친구와 함께 대내외로 열심히 일한 보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함께 일했던 요리사 친구는 열정적이었지만 감정적이었고, 공격적인 성향이 강해 저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어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장님도 그 친구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친구는 사장님과 종종 갈등을 겪었어요. 그리고 저는 중간에서 새우등이 터졌죠. 하하

고기를 자주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좋았지만

 

저는 사실 누구에게 인정받으려고, 무슨 보상을 바라고 한 것은 아니었고, 그냥 개인적인 성장을 이뤄보고 싶었고 원래 맡은 바는 끝까지 하는 성격이라 하게 되었던 일이었는데 사실 고생을 사서 한 거나 마찬가지던 것 같습니다. 일을 한 지 약 일 년이 채 되기 전, 사장님은 저희에게 전체적인 매니징을 맡기고 싶어 했어요. 사실 저는 별로 끌리지가 않아서 그냥 평소처럼 일하겠다고 했는데, 그 친구는 또 남의 말을 잘 안 듣고 고집이 센 편이라 저를 포함한 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장에 대한 믿음 하나로 계약서도 없이 본인 돈을 투자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나서부터는 사장과의 관계가 조금씩 틀어지는 것이 보였고, 그 둘은 매니징을 맡기기로 한 4개월 후 대판 싸우고 때려치우기로 했습니다. 당연스럽게 친구는 투자한 돈을 거의 돌려받지 못했고요 (사장은 아마 처음부터 다 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저도 당연히 그만두게 되었고 사장에게는 그동안 했던 너의 노력이 하나도 고맙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듣고는 정나미 똑떨어지는 퇴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ㅋㅋㅋ

즐겁게 퇴사 파티 ^_^ 하던 날!

사장 네 집에 함께 살던 저와 친구는 하루 만에 방을 뺐고 친척언니의 집에서 며칠 머물러야 했어요. 그런데도 마음은 정말 후련하고 행복했습니다. 제가 일 년 반 동안 참 마음고생 몸고생 하면서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이즈음에 남자친구가 생겼었는데,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이 친구에게 많이 의지하면서 이겨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인생에서 이만큼 힘든 일이 또 있을까? 하며 앞으로 나는 어떤 시련이 와도 이겨낼 수 있겠구나 라는 정신으로 버텼습니다. 이후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일을 이전만큼 하지 못해 여러모로 긴, 힘든 시기가 찾아왔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상황은 점점 나아 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너에게 밝은 날이 곧 올거야 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던 날의 하늘

2021년 4월 : 랭귀지 스쿨 / 7월 : 널싱 디플로마 시작

한식당을 그만 두고 나서는 캔버라 시티에서 카페 잡을 구해 일을 시작했어요. 정말 한 번쯤 일해 보고 싶었던 시티잡이었는데, 그동안 열심히 일하고 영어를 늘린 덕분에 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3개월 동안은 랭귀지 스쿨도 다니고, 2020년 7월부터는 널싱 코스도 시작했습니다. 어학당은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통근하는 시간과 효율을 생각하면 사실 스스로 공부하는 게 차라리 낫겠다... 싶을 정도 였어요. 제가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보다 영어를 훨씬 잘했거든요.

(요것도 읽어 보실 분들은 클릭!)

 

호주 어학원, 가야할까? (feat. 가장 효과적인 영어공부법)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개인의 생각이고, 주변인 중 랭귀지 스쿨(어학원)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러한 조언을 해 줄 것 같다- 라는 마음으로 적는 포스팅이기에, 이렇게 생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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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러면 뭐합니까. 7월에 널싱을 시작했는데, 선생님과 원어민 친구들 말이 반 밖에 안들리더라고요. 정말 멘붕에 멘붕이 와서 이건 국제학생으로서 노력을 더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수업 자료를 다 다운로드하여서 필기를 정말 열심히 했고, 시연하는 시험을 볼  때에도 스크립트를 다 짜가서 외워가면서 해야 했습니다 ㅜㅜ 그래도 그 정도 노력을 해야 시험을 패스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열과 성을 다해서 매번 있는 시험을 준비했어요. 그래도 사람이 익숙해진다고 자주 쓰는 문장이나 용어는 입에 익어 조금 더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수업 내용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으며 선생님들과 소통도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었어요. 아직 딱 한텀이 더 남아 내년 4월에 졸업 예정인데, 좋은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만 2년 동안 그래도 참 많은 발전이 있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대견스러워질 때가 있습니다.

2021년 8월,  나에겐 새옹지마가 되어 준 코로나 바이러스 2차 발발

그런데 코스를 시작하자마자 또 코로나가 터졌고, 지긋지긋했던 락 다운을 두 달가량이나 겪어야 했답니다. 덕분에 (?) 만난 지 6개월 만에 남자친구 집에 이사를 하게 되었어요. 매주 정부로부터 지급받았던 지원금도 저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주었었고요. 안 그래도 금전적인 스트레스가 컸던 시기였는데, (이렇게 말하기가 참 조심스럽지만) 저는 이 시기에 많은 이득을 봤던 사람 중 한 명입니다. 한국을 4년 동안 가지 못했다는 사실 빼고는요. 국경문을 닫으면서 외국인의 유입이 사라져 학생비자 소지자의 주 20시간 노동제한이 풀렸고, 남자친구와 함께 살게 되면서 렌트비를 아낄 수 있었으며, 그 덕분에 일 년이 지난 지금은 파트너 비자도 신청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호주에 오고 나서 제가 쉬운 삶을 산 건 아니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쁜 일은 항상 저를 비껴가 줬어요. 운이 없었으면 다시 한국에 돌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으로 항상 살아가고 있습니다.

올해 목표는 졸업을 무사히 마치고 꼭 병원에 취직하는거에요. 현재 에이지드 케어(요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실습 때 가던 병원과 비교하니 확실히 간호사로써의 역량을 키우기에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더라고요. 인터내셔널이라 부족한 점이 아무래도 있겠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꼭 병원 잡을 구하고 후기로 돌아오는 걸로 해볼게요. 호주에 계신, 또 한국에 계신 여러분들 다 같이 힘내서 2023도 열심히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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