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불, 누구에게는 적은 돈일 수 있겠지만 누구에게는 과분한 돈이다. 적어도 그때의 나에게는 귀중한 자본이었다.
적어도 처음 호주에 온 아무것도 모르는 워홀러라고 치면 한 달에 3천 불 이상을 세이빙 한 거나 마찬가지인데, 직접 해보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일주일에 적어도 50~ 60시간, 많을 때는 70시간까지 일해야만 했다. 내 시간은 없었지만 그래도 목표가 있었기에 이룰 수 있었고, 이때의 경험은 사실 20대 인생 중 가장 쓰라리고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값졌던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이 글은 철없던 워홀러 시절의 경험을 되살려 호주에 올 준비를 하고 있는 워홀러들을 위해 쓰는 글이다.
1. 영어 실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누가 호주 워홀을 가기 전 영어공부를 얼마나 해야 하냐고 물어본다면,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사실 자신이 농장이나 공장에 가서 일을 하고 싶다면, 혹은 하우스 키핑이나 청소잡을 해도 괜찮다면 이렇게까지 열심히는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당신들이 생각하는 호주 워홀은 아마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아무리 돈을 목적으로 호주를 온 사람이라도 호주에 온 사람들 중 영어에 대한 욕심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기에, 영어를 잘하는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면서 오지 손님들을 상대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나 카페 잡을 누구든 하고 싶을 거라고 생각한다.
'시티잡'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영어 실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어떤 사장도 영어를 못하는 서버나 바리스타, 올라운더를 고용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바쁜 매장일수록 직원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어야 하고, 호주의 공용어인 영어가 통하지 않으면 당신이 생각하는 그 시티잡으로 돈을 벌기는커녕 고용되기조차 어렵다.
그래서 내가 영어를 잘했냐고? 아니 정말 많이 부족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나름 괜찮은 편이었으나, 한국인 워홀러들의 평균적인 영어실력이 참담한 것을 보면 이게 그리 자랑할 일도 아니었다. 호주에 오기 전까지 꾸준히 영어공부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는 정말 나에게 큰 산이었다. 첫 잡을 구하고 손님들의 생소한 호주 발음에 적응하기도 힘들었을뿐더러 사장님이 베트남 분이라 특유의 발음을 알아듣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Milk도 못알아 들을 정도) 그래서 처음에는 모든 직원들이 나를 답답해했다. 그 허점을 메꾸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고 영어실력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기에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자괴감도 많이 들고 모든 것이 힘들었다. 이 말인 즉슨 적당한 영어실력을 가지고 있으면 잡은 어찌어찌 구할 수 있으나 굉장히 무시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생각하는 그 호주 워홀의 로망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다름 아닌 영어 영어 영어다.
2. 세컨 잡을 구할 것
잡 구하기에 성공했다면 메인 잡의 쉬프트가 안정된 후 세컨드 잡을 구해보자.
호주는 한국처럼 몇 시부터 몇 시 무슨 요일 정해두고 사람을 뽑지 않는다. 일단 시간이 어느 정도 맞는 사람을 고용해 본 후 점점 쉬프트를 늘려주는 형식이다. 이 말인즉슨 내 능력치가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쉬프트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뽑으려는 포지션에 이미 경험이 많고 숙련된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닌 이상은 대부분이 비슷한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편이다. 그래서 메인잡을 구한 후 한 달 정도는 무조건 그 잡에 빠르게 적응하고 오너 혹은 매니저의 신임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당신이 열심히 일하면 일할 수록 고정적인 시프트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고, 그 후에는 세컨드 잡이 있다고 하더라도 스케쥴링이 잘 될 수 있도록 고용주 쪽에서 도움을 줄 것이다.
나같은 경우에는 낮에는 카페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한식당에서 일을 했다. 시간이 다행히 겹치지는 않았는데, 나중에 한식당 시프트가 늘어 오픈 시간대를 해야 할 때면 이동 시간 때문에 카페 마감이 힘들었다. 그때 양해를 구하고 일을 할 수 있었는데, 그동안 카페에서 열심히 일했던 걸 아는 사장님이 내 사정을 다 맞춰 주셔서 감사하게도 일을 두 개 다 할 수 가 있었다.
3. 체력 관리를 하자
진부한 말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 체력관리는 필수다. 나는 호주에서 처음으로 헬스를 시작했다. 함께 워홀을 하는 친구 덕분에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일주일에 3번 정도는 가서 땀을 흘릴 정도로 운동을 했다. 천천히 체력이 느는 게 느껴졌고, 운동하는 즐거움을 처음으로 알게 되어 현재까지도 꾸준하게 운동을 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다들 하는 말이지만, 워홀러는 아프지 말아야 한다. 투잡 쓰리잡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무리 건강하다 한들 몇 달에 한 번쯤은 앓아 눕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이는 돈을 버느라 건강관리를 거의 하지 못한 그들에게 몸이 버틸 수 없는 시기가 되었을 때쯤 SOS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들 중에서도 가끔 크게 아픈 사람들도 몇몇 본 적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병원에 가기 위해 써야 하는 돈과 시간, 열심히 잡은 직장에 해야 하는 아쉬운 소리들을 생각하면 애초에 병원 갈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이 말은 단기적으로 돈을 바짝 벌고 싶은 워홀러들에게 해당한다. 장기적으로 호주에 체류할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건강을 체크하고 돈이 조금 들더라도 병원에 가길 바란다.) 그중 가장 중요한 일이 잘 먹는 것, 충분한 시간을 자는 것, 그리고 주에 3번 이상의 운동을 하는 일이다.
부끄럽지만 한인잡을 처음 시작한 날, 직원들과 술을 과하게 먹은 바람에 술병이 나서 다음 날 카페에 출근한 후 조퇴를 한 적이 있다. 이 일로 잡을 그만둘 때 까지도 꾸준히 놀림을 받았는데, 지금에야 다들 친해졌고 나도 일을 어느 정도 한 터라 그저 해프닝으로 묻을 수 있는 일이지만 내가 사장이면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애가 참 책임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체력관리, 몸관리는 나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돈을 버는 워홀러의 기본 덕목이다. 특히 투잡을 하는 사람일수록, 각 직장에서 내가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상황일수록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어떠한 고용주도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잡을 구해 한 잡이 다른 잡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체력이 되지 않는 직원에게 믿고 많은 쉬프트를 줄 수 없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4. 틈틈히 시급 인상의 기회를 노려라
돈을 벌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노동시간도 중요하지만 같은 시간 얼마큼의 돈을 받느냐가 더더욱 중요하다. 아무리 일을 많이 하더라도 시급이 낮다면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우리는 잡을 잡고도 다른 사람 하는 만큼 일하면서 현실에 안주하면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배우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시프트를 많이 받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야 하며, 내가 그만둔다고 하면 고용주가 나를 붙잡을 만한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처음 올라운더로 카페잡을 시작 하여 커피를 제외한 모든 일을 마스터하려고 노력했고, 차근차근 커피를 배워 빠른 시간 안에 나의 실력을 향상했으며, 나중에는 주방 일도 배워 간단한 메뉴는 혼자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일을 커버할 수 있게 했다. 정신없이 바쁜 시간대는 우리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인데, 이때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또 사장님이 어떤 부분을 중요시 여기는지, 내가 어떤 식으로 영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계속해서 모색하고 발전하려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고 타이밍을 잘 노려 시급 이야기를 했고, 인상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사실 호주에 산 지 삼 년이 지난 지금은 가장 좋은 시급 인상의 기회는 이직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가치는 본인 스스로 알고 있을 것이고, 점점 더 나은 환경에서 일을 하기위해 기회를 모색하다 보면 시급 인상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분이다. 하지만 호주에 체류할 시간이 약 1~2년밖에 되지 않는 워홀러들에게는 이런 부분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떤 쪽이 가장 도움이 될지를 생각하면서 움직였으면 좋겠다.
5. 확실한 목표를 갖자
목표 없는 돈은 모으기 힘들고 나가기 쉽다. 나의 목표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내가 왜 이 돈을 모아야 하는지 꼭 진지하게 생각하고 계획을 세운 후에 호주 워홀을 왔으면 좋겠다. 또 아무런 계획 없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분명히 지칠 때가 오고, 그때 나를 계속 일으켜 세워 준 것은 뚜렷한 목표였기 때문에, 목표 설정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나는 이렇게 한 덕분에 호주 워홀에 온 지 6개월 만에 1500만원 여의 학자금 대출을 다 갚을 수 있었고, 세컨드 비자까지 열심히 일해 부모님 도움 없이 학교에 등록하고 학생비자를 신청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목표가 뚜렷하다면 못할 일도 아니다.
또 돈을 모으는데에 집중을 하다 보면 영어실력의 향상이나 경험적인 면에서는 원하는 만큼의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방향 설정을 미리 하고,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호주 국경이 열리기 시작했는데, 워홀을 계획하고 있는 많은 한국 분들이 좋은 기억을 호주에서 가지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새아리의 Brunch ] > 새아리의 호주 생활 일기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컴 백 투 시티, 세컨비자 취득 그리고 셧다운 (feat. 코로나 바이러스) (2) | 2020.04.01 |
---|---|
#5 농장 생활을 마치고 번다버그를 떠나며_ 농장생활 후기 (0) | 2020.01.23 |
#4 아보카도 공장을 그만두고 다른 팜으로 이직했다 (호스텔 이동) (1) | 2019.12.18 |
#2 시티를 떠나 번다버그에 오다 - 내가 농장에 오기 까지 (0) | 2019.10.12 |
#1 프롤로그 : 안녕, 나는 7개월차 호주 워홀러야! (0) | 2019.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