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유학에서 돈이 얼마만큼 중요할까?
나는 2019년 3월, 24살에 호주에 왔다. 사실 돈도 없고 이민을 어떻게 하는지 아는 것도 없던 그때의 어린 나는 정말 대책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대학을 막 졸업해 일을 시작하기 전 워홀을 경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무작정 왔던 호주, 그래도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해서 투잡 쓰리잡을 해가며 열심히 돈을 벌었고, 살다보니 나에게는 천국이 그지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막연하게나마 이민을 꿈꾸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호주를 오게 된 이유 중 하나였던) 사촌언니는 내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이민이 하고 싶으면 캐나다를 가, 캐나다는 이민 문이 많이 열려있대. 호주는 지금 답이 없어 -라고 혀를 내두르며 조언했다. 사실 내가 호주에 왔을 때 (2019년 3월, 코로나 이전) 쯤에는 이미 이민 정책이 너무나도 강경해져 있었고, 이민을 목표로 호주에 오랫동안 머무르던 많은 외국인들이 결국 자국으로 돌아간 때이기 때문에, 이런 언니의 조언은 뼈 아프지만 백 번 맞는 말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그 때 캐나다 워홀도 넣어보긴 했지만 결국 인비테이션은 못 받았다.
하지만 그때가 이민 시장 저점을 찍었던 때일까. 사실 상황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이 후 어찌 어찌 농장에 가서 고생 좀 한 덕분에 세컨 비자까지 따서 체류시간을 좀 늘릴 수 있었고, 코로나가 터졌다. 이 기간 돈도 못 벌고 쉐어하우스에 갇혀 살면서 혼자 생각할 시간이 정말 많았는데, 마음이 복잡한 와중에 내가 호주에 남아있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다. 유투브며 블로그며 찾아볼 수 있는 정보는 다 찾아본 후 결국 가장 이민의 가능성이 높은 간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는 언니의 권유에 조금 용기가 생겨 학업을 결심했다. 어렸을 때 부터 생명과학쪽에 워낙 관심이 많고 전공도 그 쪽 관련으로 졸업을 한 터라, 어렵겠지만 해 볼 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차저차 기특하게 영어점수도 따고 한 번에 따고 어학원도 다니며 좌충우돌 안 될 것 같던 코스를 끝낸 패기 넘쳤던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코로나는 너무 나도 막대한 피해를 전 세계에 안겨 주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2차로 터진 코로나는 신의 한 수였다. 여러모로 어려웠던 학생 시절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를 벌어다 주었고, 그 6개월 동안의 시간과 돈이 나에게는 참 귀중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현재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도 그렇고, 고생스러웠던 시간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호주 이민에서 나는 꽤나 운이 좋았던 케이스라는 사실에 매번 감사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돈 때문에 이십대 전반에 걸쳐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 '돈 없는 유학생'이라는 타이틀은 겪어보지 않는다면 그 쓰라림을 아무도 모를 것이다. 지금부터 유학을 고려하고 있는,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학의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유학을 계획하는 데에 있어 돈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외국인에게만 비싼 학비가 가장 첫 번째 이유이다. 호주는 보통 풀타임 기준 일 년에 3~4천 만원 정도의 학비가 든다. 여기에 생활비와 쉐어하우스 비용을 합치면 적어도 한 달에 4~500만원(인간의 모습을 유지하는 데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금액)이 추가적으로 드는데, 대략 일 년에 약 4~5천만원의 비용이 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차가 있다던가 다른 고정 지출 비용이 있다면 이 비용은 더 늘어날 것이고, 한국에 한 번씩 왔다 갔다 하는 비용을 추가한다면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둘째, 국제학생 (international)이기 때문에 학교 커리큘럼에 따른 코스 패스 유무가 비자에 영향을 미친다. 한 유닛이라도 fail하면 안 그래도 비싼 학비를 다시 내고 같은 강좌를 들어 패스를 해야하며, 그에 따라서 당연히 비자 연장 절차도 신청해야하고, 이 또한 상당한 금액이 요구된다. 학생신분이다보니 일을 할 수 있는 근로시간에도 제한이 있으며, 학교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느라 어차피 일을 많이 할 수도 없다. 버는 돈은 보통 렌트비와 생활비로 족족 나갈 것이며, 따로 부모님께 용돈을 받거나 모아둔 돈이 두둑하지 않은 이상 당신은 안 그래도 서럽고 가난한 유학생활이 더욱 비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쉐어 하우스를 쓰기 때문에 집 환경이 좋지 않으면 공부할 환경을 만들기도 어렵고, 유난히 시끄러운 하우스 메이트에게 스트레스가 쌓일 수도 있다. 가끔 여행을 가서 스트레스를 풀고 싶기도 하나 그 또한 엑스트라 머니가 없으면 당연히 불가능 한 일이다. 주말 알바를 고정으로 하고 있다면 더더욱 여행 일정을 잡는 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끔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고 싶을 때에도 호주는 술 값이 워낙 비싼데에다가 따로 들어갈 교통비(가까운 거리의 우버가 보통 20불이다), 내일 있을 시프트를 생각하면 맘 놓고 술을 마실 수도 없다. 이는 내가 한국에 있을 때에도 느꼈던 거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 대출을 정부에서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믿을 구석이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당신은 호주 정부에서 아무것도 지원해주지 않는 외국인 나부랭이. 대출 따위는 생각 할 수 없다.
이는 학업의 질에도 굉장한 영향을 미친다. 개인적으로 디플로마를 할 때,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빠서 학업을 사실 최우선으로 두지 못했던 것을 굉장히 후회한다. 졸업장이야 어찌어찌 개기면서 따낼 수 있다 치지만, 학업 기간 중 내가 얼마나 깊은 공부를 했고 얼마나 진지하게 실습에 임했는지는 졸업 후 일을 구할 때 & 일을 구하고 나서 굉장히 큰 차이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공부 했던 간호는 어차피 공부했던 것들을 일 할 때 다 써먹어야 하는데, 학업 당시 실습하고 일하러가고 평일에 학교가고 주말에 일하는 삶을 미친 듯이 반복하면서 나의 체력과 집중력은 깊이 있는 공부를 하기까지는 굉장히 부족했다. 멘탈이 무너지는 경험을 오천만번 겪고, 현재 남친이 케어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극심한 우울증을 달고 살았을 나는 현재 잡을 구하고 나서야 내 학업이 참으로 부족했구나라는 자기 반성을 하게 되었다. + 언어적 장벽은 덤. 덕분에 취직 후 약 2~3 달 동안은 퇴근 후 집에 와서 공부하는 삶을 살았다는... 흑흑 사실 지금도 유니공부하느라 그러고 있긴 하지만.
아무튼 어찌어찌해서 유학을 잘 마쳤다고 치자. 비싼 유학을 한 만큼 영주권을 따서 뽕을 뽑아야 할 텐데(물론 영주권에 별로 뜻 없이 학업만 마치고 돌아가는 각국의 부자 젊은이들도 많다), 처음부터 계획해서 영주권 학과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일이 어려워 질 수 있다. 현재 상황에 맞추어 법무사나 유학원을 컨택해 상담을 받아보아야 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또 돈이 지출 된다. 영어 점수를 만들기 위해 시험을 준비하고 치르는 비용을 생각해보면 그것 또한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돈을 쓴다. 고용주에게 스폰을 받는 비자의 경우에는 학력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때문에 상대적으로 영어 시험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은데, 20번 넘게 영어시험을 보러 가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 한 번에 400불 이상의 시험비가 요구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시험 비만 8000불인 셈이다(이 돈이면 상태 좋은 중고차를 살 수 있다). 조건을 충족하고 비자를 신청하는 과정에 필요한 비용이나 비자 신청 비용도 어마어마하다. 내가 신청한 파트너십 비자는 비자 신청비용만 약 8000불(+ 법무사 비용 3000불)이었다. 이 나라는 아주 이민자 등골 빼먹기에는 아주 텄다.
생각해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 나라. 호주가 노인복지, 장애인 복지, 그리고 평등을 유지하는 데에 엄청난 돈을 쏟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수입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부터가 빈부격차를 완화하고 음지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질에 굉장한 노력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영주권을 주는 과정도 까다롭고 복잡하며, 아무나 자국민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 호주 살이 5년차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아무튼 예전부터 꼭 쓰고 싶은 글 이었는데, 계산을 철저하게 해서 내가 3년 동안 학업할 돈은 있으니 파트타임을 해서 생활비와 집값을 벌면서 공부를 하겠다! 라는 사람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던가 돈을 훨씬 더 많이 모아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계획한 금액만 지불하면 될 것 같지만, 학업을 하다보면 생각보다 예상외로 지출되는 금액이 정말 많다. 유학의 시작과 끝은 돈돈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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