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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리의 Brunch ]/새아리의 호주 생활 일기장

#2 시티를 떠나 번다버그에 오다 - 내가 농장에 오기 까지

by 새아리 2019.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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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다버그 시티 시계탑

사실 이제와서야 말하지만 나는 농장일을 하러 올 생각이 없었다. 시티 생활을 하다가 구한 카페 잡이 좋았고, 불안정하던 처음과 달리 돈을 벌어가며 내 생활도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고, 만나게 된 사람들이 좋았고 그래서 여기를 떠나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다들 그래서 농장을 먼저 가라고 하는 구나. 나중에 깨달았다. 알면서도 정말 가기가 싫었다.

그래서 사장의 꼬임(?)에 빠져 학생비자로 돌릴 뻔도 했다. 거의 서류까지 쓰고 나서야 사촌언니에게 말을 했고, 욕을 바가지로 먹었고, 그 덕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호주워홀을 다녀온 친구에게 연락을 해봤다.

그 친구는 호주에 2년 정도 있었던 친구인데, 퍼스트 워킹비자 때 딸기 농장에 갔다가 한 달 만에 탈출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라.

나는 아직도 세컨비자 안 딴 거 후회해.”

내가 그 때 조금만 더 참고 일해서 세컨비자를 땄더라면, 그래서 학생비자로 돌릴 필요가 없었더라면 정말 좋았을거야- 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학생비자를 고려할 때가 아니라 무조건 세컨 비자를 취득할 때라고, 만약 너가 만난 사람들이 그렇게 좋으면 비자를 연장하고 나서 다시 오면 되지 않겠냐고. 비용적으로 보는 이득이 얼마인데 그걸 그렇게 하냐고. 너 영어 잘 하잖아. 거기 아니어도 더 좋은 경험 할 수 있는 곳 많아 엘라야

그래서 그날 밤 잠을 설쳐가며 고민했다. 그리고 사장에게 내일 아침 내가 오픈 준비 다 끝내 놓을 테니 조금만 일찍 와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고 나의 금전적인 상황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공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랬더니 생각보다 쿨하게 알겠다고 하더라.

카페 사람들은 내가 다 학생비자로 돌릴 걸로 생각했던 터라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나도 알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나를 회유하는 이유는 (물론 좋은 분들 인건 맞지만) 내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걸. 그리고 내가 정말 카페 일을 하고 싶고 돈을 더 잘 벌고 싶다면 지금 나에게 세컨 비자 취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래서 바로 노티스를 내고 번다버그에 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카페에서 함께했던 사람들

 

정 들었던 캔버라와 친구들, 일터를 떠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마지막으로 일한 날 카페를 퇴근하면서 눈물이 났다.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내 성격이니 뭐 어쩌겠나.

그래도 6개월 동안 주 7, 투잡을 뛰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던 나였다. 처음에는 매일매일 사장에게 욕 먹어가며 마음 고생해서 일했지만 나중에는 나만큼 음료와 커피를 빨리 만들고 일하는 직원이 없어서 기회가 생겼을 때 바로 헤드바리스타가 되어 인정받을 만큼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인지 다음에 다시 돌아와서 다른 잡을 구하더라도 미리 겪은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916,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했고 동생을 만났다. 내게 동생이 있다는 건 여러모로 축복받은 일이라고 늘 생각해 왔는데, 타지 생활을 해야 하니 더 많은 힘이 되어 주더라. 번다버그에 도착해서 약 일주일 정도의 농장 웨이팅을 해야 했었는데, 처음 백팩커 생활을 해야 했을 때 동생이 없었다면 밥도 제대로 못 해먹었을 거고 사람들 틈에 끼어 생활하기도 눈치가 보여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정말 서로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백팩커스에 온 후 동생이랑 처음 해먹은 유부초밥.

벌써 여기에 온 지 한 달이 되었다. 삼시세끼 내 먹을 것을 직접 해야 하는 것도, 3개 밖에 없는 욕실을 자리다툼 해가면서 사용해야 하는 것도, 주방이 붐비는 시간을 피해 적절히 사용해야 하는 것도, 2층 침대가 두 개 있는 방에 4명이서 살아야 하는 것도 모두 불편했는데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라 하던가. 이제 정말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불편한 점도 딱히 없다. 운 좋게도 성향이 비슷한 방 사람들을 만나 요즘엔 넷이서 주말에 맛있는 것 해먹고 밤에 자기 전까지 도란도란 떠드는 재미에 산다. 어차피 서로 다 힘든 노동을 해야 하는지라 불평 불만하는것도 비슷하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비슷한 이야기하면서 서로 토닥여주고 응원해 줄 수 있다는 게 농장생활의 묘미라면 묘미인 것 같다.

와보니 같은 번다버그에 머물면서도 (물론 탑픽커로 돈을 잘 버는 사람들도 있지만) 농장에 따라 방값도 못 버는 경우도 있더라. 오기 전까지 의심에 의심을 했던 나였지만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블루베리 농장은 적어도 합리적인 면이 많은 편이라 이것 또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세컨 비자를 따기 위해서는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농장에 가야한다. 워홀러들의 간절한 마음을 이용해서 사기를 치는 곳이 많기 때문에 농장을 가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꼭 최대한 많은 정보를 찾아보고, 의심하고 의심하는 습관을 들였으면 좋겠다. 이건 내가 제일 못하는 일이라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닌 것 같으면 바로 발 뺄 준비를 언제라도 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대비해서 최대한 넉넉한 돈을 챙겨오는 것도 당부한다. 사람이 돈이 없으면 뭐든 선택에 제약이 생긴다. 이건 처음 워홀을 올 때 예산을 잡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어디에서나 해가 지는 노을이 참 예쁜 호주.

백팩커스 생활에 적응 했다지만 아직 편하지는 않은 건지 새벽 세시면 잠이 깬다. 앞으로 최대한 더 빨리 적응해서 받을 수 있는 웨지도 올리고 세이빙도 더 많이 하고 싶다. 그리고 그동안 못했던 영어공부도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남은 약 4개월 간의 생활이 순탄하게 흘러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나와 함께 호주 각지에서 고생하고 있는 워홀러들에게도 많은 행운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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