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생활 후기
오랜만의 포스팅이다
이글을 쓰면서도 실감이 많이 나지 않지만, 드디어 나에게도 때가 왔다
이 지긋지긋한 번다버그를 뜰 수 있는 때가.....!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치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곳에서의 긴 여정이
드디어 끝이 났다.
9월 중순에 블루베리로 시작해 12월까지 끝내려고 했던 나의 계획은
무산되어 1월 말까지 머무르게 되었고,
한 농장에서만 꾸준히 일하려고 했던 계획도 처참히 틀어져
총 4군데의 농장에서 일한 기록을 갖게 되었다.
여기와서는 참 뭐가 안풀렸다.
호주 산불이 난지도 5개월 차, 날씨가 보통때와 달리 비정상적으로 덥고 건조했다는 뜻인데
그 때문인지 일년 내내 수확할 작물이 있는 이곳에서도
흉작인 작물이 꽤나 많았던 것 같다.
보통 1~2월까지 시즌인 블루베리도 11월 중순에 갑작스럽게 끝나
백팩커를 옮기거나 떠난 친구들이 참 많았다.
나도 그 시점에 두번째 일터였던 아보카도 공장을 떠나 다른 백팩커로 옮겨 갔었는데,
여기에서도 일이 술술 풀리지 만은 않았다.
세 번째 농장으로는 미니토마토 쉐드장에서 일을 했었는데,
적응하기가 좀 오래걸리긴 했지만 일은 확실히 다른 작물에 비해 쉬웠다.
한 자리에 오래 서 있는 것이 지루하고 힘들었을 뿐 육체적으로는 힘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이 쉽다보니 다른 팜에 비해 해고될 확률이 높았던 건 함정. 그래서 첫 2 주 동안은 스트레스를 좀 받았다.
(슈퍼바이저가 와서 매서운 눈으로 쳐다보고 갔었음. 못하거나 느리면 이름을 물어보고 경고하거나 말 없이 자른다)
그래도 적응 후 부터는 할 만 해져서 두 달 동안 잘 일해보려 했었는데
일 한지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토마토 물량이 너무 적어져서
(들은 바로는 토마토 퀄리티가 너무 나빠졌다고 했다)
같이 일하는 모든 친구들이 공중 분해되는 일을 겪어야 했다
-이 때문에 토마토 쉐드장이 다시 열리길 기다리다 3주를 강제로 쉬게 되었던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세컨비자 신청을 위해서는 한 달이나 더 일해야 하는 상태였기에
매니저님한테 사정사정해서 고구마 쉐드장을 들어가기로 결정했고
그때부터 하루하루 정말 '버티는' 생활을 했던 것 같다
사람마다 맞는 작물이나 포지션에 따라서 일의 강도도 다르고 느끼는 바도 다르지만
나랑 동생은 큰 고구마를 분류하는 쪽에서 주로 일해서 온 몸이 땀에 다 젖는 날이 정말 많았다
농장마다 꼴보기 싫은 슈퍼바이저는 왜 꼭 한 명씩 있는 건지 그것도 참 고역이었고
토마토는 작업복을 3일 동안 입어도 전혀 냄새나지 않았는데,
고구마 팩킹때는 안에 티셔츠를 하나 입어야 겨우 2일을 입을 수 있었다 (내 땀냄새를 극도로 혐오하는 편)
빨래도 훨씬 더 자주 해야했음은 물론 (내 돈....) 고무장갑을 끼고 오랫동안 일한 탓에
지금 내 팔목에는 아침 저녁으로 미친듯한 가려움이 올라오는 땀띠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웃긴게 내 동생도 나와 같은 시기에 손목에 더 심하게 땀띠가 났다
자매라 이런 것도 같이 주나
시티생활을 하다 와서 그런지 시티에서는 같은 돈을 받아도 이 정도로 힘들지 않았는데
여기는 아예 육체적인 힘듦을 겪어버리니 더 고된 하루하루의 연속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시프트가 모자라서 농장을 옮겨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데이오프를 받는 날에는 사실 한 편으로 좋기도 했다
세컨 일수 때문에 불안 하면서도 쉬는게 전혀 싫지 않았다
그래서 돈을 많이 못 벌었는데도 일 수를 다 채우고 난 뒤에 그만 일하겠다고 했다
그 정도로 난 이제 여기에 질렸다
마지막 페이슬립을 받으면 바로 세컨비자를 신청할 계획인데, 차후에 포스팅 하겠다
이제 백팩커를 옮긴 후 2달 동안의 생활을 되돌아 보려 한다
한 달 정도 같은 방을 사용했던 유카가 떠나는 주에
매운걸 못먹는 유카를 위해 만들었던 잡채와 유카가 만들어준 오꼬노미야끼
저거 너무 맛있어서 이후에 우리끼리 오꼬노미야끼 또 만들어 먹었다
같이 살았던 트젠 대만친구가 정말 냄새나고 성격도 구리고 별로였지만^^(심지어 좆스플레인 개오짐)
이친구 덕분에 그나마 잘 지낼 수 있었다
어떻게 걔랑 저렇게 잘 지내지 싶을 정도로 정말 성격이 좋은 아이였다.
농장생활이 진짜 아이러니하고 아쉬운게
더 오래보고 싶은 사람들은 꼭 일찍 떠나더라.
농장에서 만난 몇 안되는 정말 괜찮았던 친구
나는 저 마라탕 맛있었는데 동생은 별로였다고;;;;; 중국인 언니가 만드는거 도와줘서 내가한건데 슈밤
서로 같은 처지를 가진 사람들이라 다들 서로 도와주고 정보 공유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 듯
타지에서는 서로 돕는게 곧 내가 사는 길이다
이미 두 친구가 떠났고 우리도 떠날 예정이지만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다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살면서 건강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건 단 하루의 저녁도 허투루 먹지 않았던
나와 동생과 유나의 밥ㅋㅋㅋㅋㅋ
셋이 먹으니 항상 푸짐하고 맛잇었다 지금보니 진짜 먹을건 잘 해먹었다
계속 쓰다보니 먹을거 소개밖에 안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는 딱히 추억 만들 일이 없어서 먹을게 곧 추억이다
마라샹궈 진짜 만들기 쉽고 맛있다 다 따로 볶고 소스만 넣으면 됨
약간 야채만 우리 스타일로 바꾸면 더 맛있는 마라샹궈가 될 듯
나윤이랑 시티가면 다시 해먹기로 했다
그래도 동생이랑 유나가 옆에서 축하해주고 잘 챙겨줘서
외롭지 않았다
생일날 동생이랑 파트너로 같이 일했는데 유독 욕을 많이 하긴 했다
동생이랑 엄청 친하면서도 4개월 반동안 맨날 붙어다니면서 싸우기도 오질라게 싸웠는데
막판되니 그래도 동생이 옆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동생이라 더 편해서 짜증을 많이 내게 되는게 싫었는데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일해보니 서로에게 서로 만한 파트너도 없다는걸 둘다 실감함
그래도 나름 6개월 경력 치고 커피를 꽤 잘 만드는 바리스타였는데
4개월 반 동안 커피 만들고 싶어서 진짜 너무 서러웠다
그래서 저그도 리젝샵에서 구하고 프레스기로 스팀밀크 만들어서
종종 감 잃지 않게 라떼아트 연습하고 그랬다
이노무 비자가 뭐라고
이제 돌아가면 원없이 만들고 일취월장한 실력발휘를 해 보일 것이다
다 디져따
내가 이 통근길이 기억은 날까
극혐이라는 것 밖에 사실 말이 안나올 듯 하긴 한데
나름 이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으로 미화되겠지
여기 오기 전에는 농장생활 괜찮을까 어떨까 마음 졸이며 긴장하고 많이 찾아보며 번다버그에 왔었는데,
사실 뭐 좋고 말고는 같은 지역, 같은 백팩커, 같은 농장에서 머무르고 일을 하면서도
사람마다 운에 따라 능력에 따라 시기에 따라 결과는 천차 만별이라는 점을 이야기 해 주고 싶다.
시기를 잘 타서, 운이 좋아서, 잘 맞는 팜에 들어가서 한 농장에서 꾸준히 일하고 단시간에 세컨을 따는 친구들도 있고
운이 약간 나빠서, 시기를 잘 못타서 혹은 농장생활이 너무 힘겹거나 능력이 부족해서 등의 여러가지 이유와 변수들로
돈을 잘 못 벌고 세컨비자를 따는데 조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친구들도 많다.
다만 이번 해에 나처럼 이곳에 와 고생을 조금 더 한 친구들을 꽤나 많이 보았던 것은 사실이다
(머물렀던 두 백팩커에서 같은 현상을 보았으니...)
아니면 내가 운이 조금 안 좋았을지도 모르지. 억울하긴 하지만 액땜했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고생한 시간을 보상할 만큼 시티에서 열심히 일하련다
2020 조진다 딱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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