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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리의 Brunch ]/새아리의 호주 생활 일기장

#20 내일은 4년 만에 떨리는 마음으로 한국 땅을 밟는 날

by 새아리 2022.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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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드디어 나도 한국에 간다

드디어 한국에 가는 날이다. 2019년 3월 처음 호주에 온 후로 코로나 발발 + 학생비자 시작으로 인해 단 한 번도 한국에 갔다 오지 못했었다. 그러다 비행기표를 산 지도 약 4개월, 시간이 참 빠르기도 하지, 드디어 출국 날이 되었다. 호주 내에서 국내선은 몇 번 타 봤지만, 드디어 편도로 장장 10시간이 걸리는 국제선을 탄다는 게 잘 실감이 나진 않았다.

평일날 출발해야 해서 남자 친구와는 아침에 작별인사를 했다. 연애 후 6개월 만에 동거를 시작한 이래로 하루 이상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우리 둘에게는 처음으로 겪는 장거리 seperation이 되는 것이다. 나름 씩씩하게 다녀오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막상 당일이 되니 마음이 약해지기 그지없었다. 내가 이 친구에게 참 의지를 많이 하며 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평소에도 서로에게 고맙다는 말을 참 자주 하는 우리지만, 출국 전 날 서로에게 말하는 고마움은 그 어떤 날 보다도 진솔하게 느껴졌다.

내가 너 없이 지난 2년을 잘 지낼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만 해도 눈물이 주룩주룩 나고 슬펐다. 나는 진심으로 이 아이가 내 옆에 없었다면 죽었을 지도 몰라-(그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뜻이다) 하는 생각이 나서 나는 참 복도 많은 년이구나 싶었다. 그동안 못 봤던 그리운 가족들을 보러 가는 길인데, 내 소중한 이들을 보기 위해는 또 다른 소중한 사람과 작별을 해야 한다. 호주는 워낙 이민자의 나라라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을 보아왔지만 다들 잘 참고 살기에, 그냥저냥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싶기도 했다. 아니더라. 다들 어쩔 수 없으니 잊으려 노력하며 사는 거더라. 그들과 나는 때때로 아주 많이 슬프고 괴롭다. 때마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은 아마 이민자들에게는 평생 달고 살아야 하는 오래된 지병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캔버라와 시드니 구간을 운행하는 머레이버스

남자 친구 어머니가 머레이 버스 터미널까지 배웅을 해 주셨다.

남자 친구를 만나고 나서는 차를 타고 시드니에 갈 수 있어서 2년 동안은 머레이 버스를 탈 일이 없었는데, 이번엔 나 혼자 하는 여정이라 버스를 예약했다. 처음 머레이 버스를 타고 시드니에서 캔버라에 온 날이 생각이 난다. 버스기사가 방송으로 뭐라 하는지 그땐 한 마디도 안 들렸는데. 4년이 지난 지금은 그래도 대충 뭐라 뭐라 하는구나 이해는 간다.  그놈의 영어, 영어. 4년 내내 날 힘들게 했고 앞으로도 힘들게 할 테지만, 잘하게 되면 될수록 내 호주 생활을 비교도 안 되게 편리하게 해 주었던 놈. 난 또 한 번 세월의 흐름을 느꼈다.

동생이 사주는 맛난 저녁

한국 가기 전 날 동생을 만나서 저녁을 같이 먹고 동생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동생도 셰어생이지만 마침 셰어 메이트가 방을 비워 집이 빈 상태였다. 덕분에 편하게 하루를 묵을 수 있었다. 시드니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동생이 어벙한 내 손목을 잡고 끌고 다녀줬다. 내가 너 유치원 등원시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필자 초등학생 때, 동생과는 5살 나이차가 나기 때문에 동생 유치원 버스를 종종 태워 보내곤 함)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저녁은 내가 초밥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서 이끌려온 동생 픽 맛집, 웨스트 라이드 모에루라는 초밥집에 갔다.

이 초밥 증말 맛있어서 자기 전까지 맛있었다고 얘기함. @웨스트라이드 모에루 Moeru

호주에서 이렇게 한국 스타일로 맛있게 파는 초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파인 다이닝에 가도 이렇게 두껍게 회를 썰어주는 곳을 본 적이 없다ㅠㅠ) 여기는 가격도 나쁘지 않고 맛도 정말 맛있었다. 우리가 오픈런을 한 덕분에 밥이 따뜻해서 그랬나? 밥알의 지어짐과 새콤달콤하게 된 간의 정도가 가히 완벽해서 회의 식감을 엄청나게 돋우었다. 치킨 가라아게는 생각했던 것보다 바삭하지는 않아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이곳은 다른 디시보다 니기리의 퀄리티에 집중된 맛집인 것 같았다. 다음에 또 와야지.

아침에 먹은 넛바 안먹었으면 큰일났을뻔

다음 날 아침 공항에 가기 전 집 근처 카페에 들러 커피와 넛 바를 먹었다. 공항 탑승 수속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저거라도 안 먹었으면 정말 배고파 죽지 않았을까 싶다. 평소에는 지방 함량이 많아 넛바를 잘 먹지 않는데, 그래서인지 참 맛있게 느껴졌다.

아슬하지는 않았지만 여유롭지 않게 체크인과 기내에 반입할 물품 스캐닝이 끝났다. 국제선은 국제선인지라, 체크인하는 데에도 한 시간은 기다리고 스캐닝도 삼십 분은 걸린 것 같다. 혼자 왔으면 참 지루했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쉴 새 없이 동생과 떠들다 보니(사실 주로 내가 일방적으로 떠드는 편이다) 조금씩 배고픔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막 스캐닝이 끝난 후에는 항공사에서 보딩을 시작한다고 문자가 와 얼른 토스티 하나를 사서 반을 나눠먹었다. 그거 먹었다고 좀 살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나는 그걸 먹고도 부족해서 비행기에 타자마자 과자 한 통을 비웠다. 나는 긴장하면 뭘 많이 먹게 되는 편인데, 아마 열 시간 넘게 내 맘대로 뭘 먹고 마시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스트레스가 되어 칼로리를 비축해 놓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변명을 해두고 싶다 (그냥 많이 처먹었다를 이렇게 길게 씀).

비행기는 낮 비행기, 장장 10시간이 걸리는 여정이라 동생의 책을 두 권 빌려왔다. 나는 영화를 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 기회에 책이나 읽어야 겠다 싶어서 오게 되었다. 맨날 사용하는 게 핸드폰이다 보니 비행기를 타는 동안이나마 잠시라도 전자기기와 멀어지고 싶기도 했다(사실 별 의미는 없었다). 이렇게 진득하니 앉아 책을 읽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어렸을 때는 정말 많이 읽었었는데, 오히려 성인이 되니 삶이 바빠 책을 읽을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기내식은 버터 치킨을 주문했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서 거의 다 먹었다. 그래도 이렇게 먹었다고 가는 비행기 내내 배는 든든하게 갈 수 있었다.

15불 짜리 쿠폰이 있길래 맥주를 사먹었다. 맥주는 10불인데 비싸지만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다. 비행기 타고 먹는 맥주라 더 맛있게 느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열 시간의 비행이란 너무나도 힘든 것이었다. 가져온 두 권의 책을 다 읽었을 때에는 겨우 4 시간이 지나있을 뿐이었다. 아직도 여섯시간이나 남았다고?  너무나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처음 호주에 왔을 때는 밤 비행기였고, 경유를 한 번 해서 8시간, 4시간 비행한 것이 다였는데 이렇게 긴 시간을 비행해 본 것은 처음이라는 걸 방금 깨달았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경유가 나으려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원래 물을 자주 많이 마시는데 비행기에서는 물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아 두 번이나 따로 구매해서 사 먹었다. 열 시간 동안 화장실도 여섯 번은 간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물도 잘 안 먹고 화장실도 나만큼 가는 것 같지 않아 약간 민망했다. 내 좌석이 복도 쪽 인 게 천운이었다. 잠자는 시간이 아니다 보니 잠도 잘 안 왔다. 두 시간 정도가 남았을 땐 정말 일 분 일초가 고역이었다.

정말이지 집에 가고 싶었다.......

계속 착륙까지 얼마나 남았나 확인하고 확인했다. 얼마나 오래걸리던지....

다행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비행이 끝나고 드디어 착륙을 했다. 출발이 지연된 만큼 도착도 늦게 했는데, 수하물 찾고 나가는 데까지 한 시간 정도가 걸려서 약 밤 10시쯤 도착을 한 것 같다. 아빠는 우리가 9시에 비행기에서 내렸다는 연락을 줘서, 금방 나오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 시간을 내내 공항에서 목이 빠져라 출구 쪽을 바라봤다고. 아빠가 해외여행을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다시 상기되었다. 다음에는 꼭 아빠를 호주에 데리고 와야지.

인천공항은 참 크다. 수하물 찾으러 가는데도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한국 공항에서는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는데, 내리자마자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나와 동생은 검역소 직원들에게 몇 번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권고를 받아야만 했고 (알고 있어요;;;), 공항 직원들에게 물어 물어 겨우 마스크를 얻을 수 있었다. 마스크를 쓰자마자 느껴지는 답답함, 그리고 마스크를 쓰지 않았을 때 보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잠시나마 참 따가웠다. 호주와는 다른 한국의 분위기가 한국 땅을 밟자마자 바로 느껴졌다.

엄마아빠를 만나고 난 후 먹은 땅콩빵. 여기 정말 맛있더라....특히 붕어빵에는 백앙금이 들어있는데, 정말 맛있었다. 백앙금 > 땅콩빵 > 호두과자 순으로 맛있었는데 다 맛있었다. 어후 이 집 이름은 락희제과점이다.

드디어 엄마 아빠를 만났다. 엄마가 약간 울고 있어서 조금 민망했다. 나는 오기 전 미리 다 울고 와서 막상 엄마아빠를 만났을 때에는 눈물이 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우리가 해외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아프실 부모님일 텐데, 씩씩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생이 약간 출출하다고 해서 호두과자와 땅콩빵을 사 먹었다. 이걸 먹자마자 그동안의 피로가 싹 가시는 느김이었다. 그리고 참 행복했다. 내가 이 맛을 느끼기 위해 장장 왕복 이백만 원에 달하는 비행기표 + 10시간의 비행을 해냈구나... 장하다 내 자신.

엄마 밥 >>>>>>>>>>>>>파인다이닝

집에 오자마자 다음날 아침 엄마가 해 준 미역국을 먹었다. 나는 미역국을 참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엄마의 미역국은 단연 으뜸이다. 오기 전부터 미역국 끓여달라고 노래를 불렀었다. 이렇게 차려진 칠첩반상을 받아 보는 게 언제였던가. 밥상을 보는 순간 눈이 돌아가서 미친 듯이 흡입을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동생이 언니 잠시 calm down 좀 하라고 했지만 그게 뭐 먹히겠는가. 남자 친구에게 나도 밥 해주는 엄마가 있다고 엄청나게 자랑했다. 남자 친구랑은 다음에 한국에 같이 오기로 했는데, 아마 우리 엄마 밥상을 한 번 받아보면 눈이 뒤집히지 않을까 싶다. 

어찌 저찌 해서 이렇게 한국에 왔다. 오자마자 적응도 잘하고 있고, 밥도 잘 먹고 있고, 운동도 잘하고 있다.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것들, 그동안 너무나도 그리웠던 것들을 원 없이 하고 호주에 돌아갈 예정이다. 돌아가면 또 고생길이 훤하니까.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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