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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리의 Brunch ]/새아리의 호주 생활 일기장

#17 호주 유학을 하며 문득 깨달은 것 : 한국인과 호주인의 차이점

by 새아리 2022.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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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 유학을 하며 느낀 나(한국 학생)와 호주 학생들의 차이점

나는 작년부터 간호 유학을 시작했다. 코스를 시작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작년에는 거의 공부를 하지 못했다. 덕분에 올해 주 5일 타임테이블을 소화하고 있는데, 대면 수업이 가능해지면서 다행히 실습과목도 수강할 수 있게 되었고, 첫 실습도 다녀올 수 있었다. 드디어 공부다운 공부, 수업다운 수업을 들으면서 호주 학생들과 다양한 국제학생들의 특징을 하나둘씩 알아가고 있고, 나 또한 뚜렷한 특성을 가진 한국인으로서 우리는 한 교실에서 같은 수업을 받고 있지만 이렇게나 다르구나, 라는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시점이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내가 참 크게 느꼈던 나와 호주 학생들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 축산학과를 전공했다.

원래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수능 성적이 수의학과 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공부는 열심히 하는 편이었는데, 공부하는 요령은 참 부족했던 것 같다. 아무튼 수능 성적에 맞춰 동물 관련된 분야를 가고 싶어 선택한 것이 축산학과(정식 명칭은 동물생명공학과이다)였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휴학 1년을 끼고 4년제 대학교를 졸업했으니, 웬만한 한국인으로서 배워야 하는 공통 커리큘럼은 다 겪은 보통의 한국인이라고 보면 되겠다. 예를 들면 지토(헬로 지토 헬로)를 안다던가, 사미인곡을 안다던가, 한 때 수험생을 모두 울린 9월 모의고사의 지문을 안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그 유명한 한국형 교육을 철저하게 주입받은 한국인 학생임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졸업하려고 썼던 졸업논문....하하...

작년, 호주 유학을 처음 경험해 본 랭귀지 스쿨

가장 높은 반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낮은 학생들의 실력에 혼자서 통탄하며 다닌 10주. 요때는 유학생이라고 하기도 힘든 수준의 교육이어서 딱히 뭐 말할 게 없다. 진짜 호주 현지 학생들 + 인터내셔널 학생들과 공부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작년 Diploma of Nursing을 시작하고나서부터였는데, 현지 학생들도 굉장한 뜻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이 많아 다들 수업에 열심히인 편이고, 간호학과에 들어가기 위한 영어 점수가 each 7.0이라 그런지 국제학생들의 영어 실력도 꽤나 좋았다. 나도 엄연히 입학 기준 점수보다 높은 영어 점수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수업을 이해하고 따라가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다들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자극을 받아 꾸역꾸역 커리큘럼을 소화해 나갔던 것 같다. 다행히 아주 천천히, 조금씩이긴 하지만 내 영어실력은 아주 많이 나아지고 있는 중이다.

코스를 시작한 지 약 반년이 지나서야 거의 모든 classmates 들과 한 번씩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그러다 보니 반 분위기도 서먹했던 처음과는 다르게 굉장히 화기애애해졌다. 실습 과목 평가를 볼 때도 어느 누구와 짝이 되던 편안하게 시험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던 와중 첫 실습을 다녀왔고, 실습이 끝난 뒤 처음 했던 대면 수업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첫 실습한 느낌이 어땠는지 물어보고 서로 의견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이 학생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어땠는지 물어보는데, 다들 뭐 괜찮았다, 좋았다, 재미있었다 등으로 후기를 이야기하더라. 사실 같은 반 친구들의 긍정적인 후기를 들으면서 뭐야 나만 힘들었나 하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는데,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고 자연스럽게 내 차례가 되었다. 알다시피 한국인은 뭘 포장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좀 부정적이긴 하지만 솔직한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사실 저는 제 퍼포먼스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아요. 첫 실습이다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많은 제한이 있었고 , 그래서 간호사분들과 환자분들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한 게 조금 아쉬워요.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많이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내가 이 말을 하자마자 약간 반에 정적이 도는 것이다. 모두들 나를 쳐다보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아니 너 이거 첫 실습이잖아? 너 아마 잘했을 거야. 그렇게 스스로에게 너무 부담 주지 마!"하고 온 반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나에게 응원의 말을 건넸다. 선생님도 자신에게 너무 harsh 하지 말라고 같은 말을 하셨고,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참 감사했다.

사실 선생님과 학생들의 이런 반응을 본 건 처음이 아니었다.

한 달 전 봤던 평가 중에 학생들끼리 스스로 결과물이 어땠는지 평가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이 있는 평가가 있었는데, 스스로에게 피드백을 주는 시간이었다. 그때도 선생님이 긍정적인 피드백을 먼저 말하라고 한 걸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먼저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 점이 잘했는지 말하라고 하는데, 도저히 생각이 안나는 거다. 내가 뭘 잘했지? 진짜 뭘 잘했을까?  컴퓨터에 블루스크린이 떠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듯한 감정이 머릿속을 교차했다. 정말 겨우겨우 생각해서 답변을 했고, 선생님의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다.  끝나고 생각해보니 내가 생각보다 잘한 점이 꽤 있었는데 왜 이렇게 생각해 내는 게 어려웠을까 싶었다. 그러고 나서 똑같은 상황을 또 겪고 나니, 나는 참 뼛속까지 한국인이구나, 그동안 내가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고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실히 드러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 차이라는 게 여기서 드러나는구나, 하고 신기하면서도 조금은 씁쓸했다.

예전에 서양인 학생들과 동양인 학생들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하나 본 적이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교대 강의실에서 하는 강의였는데 교수가 서양인 학생 하나 동양인 학생 하나 뽑아 놓고 몇 백명의 학생들 앞에서  너는 네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니?  에 대한 대답을 듣는 거였다. 서양인 학생은 자기 자신은 좀 똑똑한 것 같다. 하고 대답 했고 이유로는 자기는 뭘 잘하고 뭐도 잘한다 등등의 답변을 했다. 반면 동양인 학생은 자기는 별로 똑똑한 편은 아닌 것 같다, 하며 겸손한 답변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동양인 학생의 성적이 서양인 학생의 성적보다 높았고,  동양인 학생은 4년제 코스를 2년 만에 소화하여 서양인 학생과 같은 학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졸업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동양인(한국인) 학생은 자신이 똑똑한 것 같지는 않다, 부모님도 속으로는 나를 자랑스러워하시겠지만 밖에서 자랑을 할 정도로 드러내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대답한 것이었다. 이 상황을 보고 있던 모든 학생들이 놀랐었고, 교수가 학생들에게 설명하려고 했던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 장점에 집중하는 서양 문화와 단점을 보수하는 동양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시어서 기억에 남았다.

우리가 조금은 우리 자신에게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호주에 와서 가장 많이 느낀 점이다. 한국인들은 참 본인에게 엄격하고 남에게는 더 엄격하다. 이 엄격함이 사실 전쟁의 폐허만이 남아있던 1950년대의 한국을 70년이 지난 현재 전 세계가 인정하는 나라로서의 발전을 이룩하게 하기까지 정말이지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매스컴, 댓글 문화를 보자.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별 것도 아닌 것에 시시비비를 따진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냐만 유명 연예인의 도덕성에는 결함이 없어야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90점이라는 점수가 칭찬받을 점수가 아닌, 100점에서 10점이 부족한 점수로 인식되는 나라가 한국이다.

여기 호주 사람들은 참 칭찬에 유하다. 뭐만 하면 lovely, gorgeous 가 남발이 된다. 그냥 하는 대답으로도 아 그렇구나(I see)가 아니라 awesome, beautiful, brilliant 을 사용한다. 뭐가 그렇게 사랑스럽고 아름다운지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되는 문화 중 하나였는데, 살다보니 그냥 이게 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실제로 호주인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런 대화 방식이 굉장한 positivity를 준다는 걸 알게된다. 나는 그냥 커피 만들고 손님 상 치워준 건데도 어깨가 으쓱해진다. 속으로는 또 오바떤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긍정적인 말들이 주는 효과를 마냥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칭찬하는 데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잘했는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피드백은 항상 잘한 것과 발전해야 할 부분을 함께 이야기하되, 학생들이 본인 자신을 '부족하다'라고 인식하게끔 하기보다는 북돋아주는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물론 현재 상대평가가 주가 되는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으로써는 너무나도 이상적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천천히라도 꾸준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호주라는 나라에서 어떻게 인재들을 길러내는지, 그리고 호주의 교육 시스템을 받은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면 수학 진도 떼는 게 정말 인생의 진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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