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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리의 Brunch ]/새아리의 호주 생활 일기장

#18 남자친구에게 운전 면허 연수를 받으면 안 되는 이유 : 호주에서 운전연수 받기

by 새아리 2022.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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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이 필수인 나라, 호주의 운전면허 시스템

나는 현재 호주에서 초보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는 L plater다. 호주는 운전면허가 세 단계로 나뉘어 있는데, 주마다 법이 약간씩 다르지만 대략적인 프로세스는 같다. 필수로 들어야 하는 운전면허 교육과 필기시험을 합격하면 L(Learner) 라이선스를 갖게 되고, 함께 받게 되는 Log book에 운전 연수를 얼마나 했는지 기록해야 한다. 25세 미만이면 1년 동안 100시간, 25세 이상이면 6개월 50시간이라는 필수 연수 시간을 채워야 하고, L plater들은 항상 Full license를 소지한 동승자와만 함께 운전할 수 있다. 이 조건을 충족하여 정부에서 주관하는 운전면허 시험을 신청하여 보거나, 등록된 자격증을 가진 Driving instructor와 시험을 진행하여 패스하면 P license를 신청할 수 있다. 동승자 인원수에 제한이 있긴 하지만 P plate부터는 혼자 운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Full license 소지자보다 조금 더 법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사실 별 다른 불편함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호주의 많은 학생들은 운전면허를 딸 수 있는 법정 나이(약 16세)가 되면 바로 L license를 신청하고 20세 이전에 P license도 따서 현지 학생 절반 이상이 운전을 하고 다닌다. 아무래도 호주가 운전면허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나라 이기도하고, 생활 수준이 높기 때문에 보이는 현상인 것 같다. 우리나라도 많은 학생들이 수능을 보자마자 운전면허를 따지만, 차를 소지하고 실제로 운전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기에, 보통 빠르면 이십 대 중반이나 사회생활을 하게 되는 이십 대 후반쯤 다들 제대로 된 운전을 시작하게 되는 것 같다.

호주에서 운전면허를 받게 된 계기

아무튼 나도 한국에서 대중교통만 주구장창 애용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고, 어찌어찌 면허의 필요성을 느껴 따놓기는 했지만 아빠에게 몇 번 운전연수를 받으며 좀 처럼 화를 잘 내지 않는 아빠를 뜨거운 감자처럼 달구었던 전적이 있다. 호주 오기 전에 혹시 몰라 운전 스킬은 익혀놔야 할 것 같아서 사설 업체에 문의하여 운전 연수를 신청했었는데, 운전 연수 첫날부터 사고가 아주 크게 나 (상대방 잘못이 100퍼센트였다) 2주간 물리치료를 받고, 두 어달 정도를 잘 뛰지는 못할 정도로 고생했던 경험이 있다. 그 후  차 사고라는 것이 아무리 내가 조심한다고 예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걸 느껴서인지 버스 앞자리에 타는 것만으로도 운전에 트라우마가 생겼다. 차가 폐차 되었을 정도로 컸던 사고 규모에 에 비하면 내가 다친 것은 거의 다친 것도 아니었지만(무릎 옆만 조금 찢어지고 충격으로 인한 타박상이 있어 입원을 했다), 사고 시점 내 차가 상대 차와 빠른 속도로 부딪히던 그 순간 차량 앞유리가 부서지면서 기름 냄새가 올라오던 장면을 아마 평생 잊지는 못 할 것 같다.

그러나 호주에 온 지도 이제 3년, 사고가 난 지도 4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 나는 정말 운전면허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고, 이동하는데에 있어 남자친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나 실습을 중간중간 가야 하는 간호학생으로서 항상 픽업을 부탁해야하는 입장이라, 하루라도 빨리 운전 면허를 따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처음에는 한국 면허를 호주면허로 바꿀까, 생각도 들었는데 엄마가 한국에 있는 운전면허를 오랫동안 보내주지 않은 덕분에 (^^) 호주 정식 면허를 처음부터 따기로 결심했다. 운전 연수를 받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연수비용이 부담스럽게 느껴졌고 (1회 65불-80불 정도), 운전에 익숙해 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멀티태스킹 / 조작 능력 / 공간 감각 능력은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만류하는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친구에게 주행부터 연수를 받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어떻게 한국에서 운전면허를 땄지?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을 다 까먹었더라. 운전이라는 행위 자체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감각능력과 운동능력을 동시에,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나는 운동근육을 운전에 익숙하게 만들고 자연스럽게 훈련되게 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선천적으로 감이 떨어지는 것도 있고, 내 차가 아직 없어 운전 연습할 기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게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남자 친구는 정말 상냥하고 좋은 사람인데, 나에게 운전 연수를 해주면서 꽤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했다. 뭐, 당연한 얘기 아닌가. 나도 나를 못 믿겠는데 옆에서 타고 있는 동승자는 얼마나 목숨의 위협을 많이 느끼겠나. 또 내가 호주 도로에 익숙하지 않아 몇 번 정말로 위험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가지 말아야 할 차선을 간다던가, 방향등 친 쪽과 다른 쪽으로 간다던가 하는. 하하...

그러다 보니 당연스럽게 나도 멘붕이 온 상황에서 남자 친구는 날 더 멘붕에 빠뜨렸다. 나는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인데, 혹시나 운전하면서 위험할 까 봐 정말 정신줄 붙잡고 핸들을 돌리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집에 간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그가 워낙 평소에 다정한 사람이라 조금만 차갑게 지적하거나 언성이 높아져도 상처를 받았다. 주행에 조금 익숙해지기까지, 정말 몇 번이고 그냥 강사한테 가서 연습할까를 수 십 번 생각하고 남자 친구에게도 너 정말 나를 계속 가르칠 수 있겠냐고, 백 번은 물어 본 것 같다. 그때마다 남자 친구는 자기는 운전하는 동안은 날이 서있고 무서워서 자기도 모르게 평소보다 말이 세게 나가는데, 끝나고 나면 다 잊어먹는다고 한 번 가르쳐 주겠다고 말했으니 끝까지 가르쳐 주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정말 남자 친구는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닌 경우에 나에게 한 번도 짜증을 낸다던가, 기분 나쁜 표현을 한다던가 한 적이 전혀 없다. 오히려 내 감정 변화가 자잘하게 많고 변동이 심한 편이다.

이런 남자친구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나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열심히 배웠다. 차로 집에서 20분 정도 되는 헬스장과 학교를 왔다 갔다 해보기도 하고, 날 잡아서 주차 연습만 주야장천 한 적도 있다. 그나마 이런 남자 친구의 노력 덕분에  이만큼이나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사고 트라우마가 크게 있었던 내가 액셀을 밟고 핸들을 돌린다는 사실 자체에 감격한 적도 많다. 하지만 제대로 된 운전을 하고 면허를 따기 위해서는 이에 안주 할 수 없다. 당연스럽게도 그 이상의 능력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운전연수를 굳이 공인된 강사에게 받아야 하는 이유

왜 사람들이 강사가 아닌 가까운 사람에게 운전연수를 받지 말라고들 하는 건지 정확하게 적어보겠다. 보통 사람들이 "야 가족이나 남자 친구한테는 운전 연수받는 거 아니야, 그건 진짜 달라"라고 하는데 이유를 설명을 잘 못하더라. 아래는 내가 뼈저리게 느낀 운전 연수 전문가와 비 전문가의 차이점이다.

1. 수많은 경험으로 초보 운전자들이 어떠한 실수를 왜 하는지 안다.
사실 이게 내 남자 친구에게 연수를 받을 때 가장 답답했던 부분이었다. 그는 내가 어떠한 운전 실수를 하면 왜 이런 실수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본인은 처음부터 잘했거나, 혹은 본인이 운전을 배운 시절이 꽤나 오래전인 경우). 보편적으로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운전에 있어 배움이 느리고 이해도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기에,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여성분들이 꽤나 많더라. 처음 후진을 연습할 때도 핸들 조작하는 것이 그렇게나 헷갈렸는데 남자 친구는 그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내가 위에서 말했듯 muscle memory를 만들기 위해 남들보다 3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 정도 했으면 이 정도 해야 하는데 아직도 왜...? 이런 느낌.

2. 전문가는 초보자가 당황했을 때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즉, 본인 감정 컨트롤이 가능하다.
그들은 지금까지 수 없이 많은 어처구니 없는 초보 운전자들을 만나 봤을 것이고,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 봤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어떤 실수를 해도 본인의 감정을 티 내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당황하지 않게 안심시켜줄 줄 알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스무스한 대처가 가능했다. 또한 초보 운전자들이 본인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거나 수행 능력이 떨어져도 절대 짜증 내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운전연수를 해주는 사람이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어도 이 부분에서 본인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해결이 가능하다면 배워도 괜찮을 것 같다. 근데 99.7퍼센트의 확률로 못 찾을 거다. 운전 강사들도 처음부터 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연차가 쌓이면서 생긴 내공으로 컨트롤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걸 처음부터 잘했으면 그사람은 뭐 부처님이 아닐까. 

3. 교육 받고 경력 있는 강사가 아닌 이상 초보자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설명을 해주기가 어렵다.
이건 특히나 주차를 연습하기 시작하면서 정말 많이 느껴졌던 부분이다. 이미 주차에 익숙하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차가 가능한 베테랑들 중에서 주차 설명을 잘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든데,  수능 잘 봤다고 족집게 과외 선생님이 되기는 힘든 것과 같은 원리이다. 보통의 운전자들은 초보 운전자가 어떤 부분을 간과하고 있는지, 어떤 부분이 부족하여 결과물을 도출해 내지 못하는 건지 운전자의 약점과 강점을 파악하기가 어려울뿐더러 초보자가 이해하기 쉬운 설명을 해주기가 어렵다.

실제로 나는 꽤나 오랜 시간을 남자 친구와 운전 연습(주로 주행)을 했었는데, 주차를 할 때마다 참으로 많은 역경이 있었다. 나는 주차의 원리를 모르고, 어떻게 수정하는지를 모르는데 남자 친구 또한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할지, 내가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그러나 운전 강사는 내가 어떤 능력이 부족한지,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핸들 조작에 따른 차의 움직임 정도를 이해하고 있는지, 엑셀을 얼마만큼 밟고 얼마만큼의 속도를 내야 하는지 안다. 

그래도 주행연습은 꽤나 많이 했었는데, 운전 연습을 그렇게 했는데도 감을 잘 못 잡아서 처음 7번 수업을 듣고, 7번을 더 결제했다. 주차를 배워본 적이 없어서인지 아직도 평행주차가 많이 어렵다. 매 번 차를 탈 때마다 새롭고 긴장이 된다. 그래서인지 강사와 함께 수업을 진행할 때 하는 중간 리뷰를 fail 해 버렸다.ㅎㅎ 평행 주차가 아직 미숙했기 때문. 나는 이거 하나도 너무너무 어려운데, 도로에서 운전을 너무나도 편안하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부럽다. 나는 얼마만큼의 훈련이 되어야 내가 무섭지 않고 나를 믿을 수 있을 정도로의 운전이 가능해 질지 모르겠고, 도로에 있는 저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과정을 겪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물론 제대로 운전하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았으니 미숙한 것이 당연한 거고, 시간이 흘러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스스로가 답답해서 자괴감이 좀 든다. 

6월까지 P를 따는게 목표였는데, 아무렴 조급하지 않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어차피 차도 내년에 살 예정이니 굳이 이번 연도에 빨리 운전면허를 딸 이유는 없다. 나는 많은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꿋꿋하게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노력하는 나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운전 그거 좀 못 할 수 도 있지, 시간이 지나고 나도 연습할 기회가 많아지면 알아서 자연히 터득하게 되는 것 아니겠나.  다음 달에는 P 면허를 딴 후기를 가지고 돌아올 수 있도록 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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