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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리의 Brunch ]/새아리의 호주 생활 일기장

#16 스물 여섯이 되고 나서야 든 생각 : 나 요즘 좀 어른인가

by 새아리 2022.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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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좀 내가 새삼스럽게 어른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나이 만으로 스물여섯, 한국에서는 뭐 적지 않은 나이이지만 호주에 살다 보니 만 나이의 영향과 나이에 굳이 신경 쓰지 않는 문화 때문인지 내가 어른 같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이 살아왔다. 엄마가 나를 가진 나이가 스물여섯이었고, 내가 그 나이가 벌써 되었구나 하면서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 나는 좀 내가 어른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어른같지 않다고 생각했던 이유

내가 너무 모르는게 많아서였다. 아직도 세상은 나에겐 너무 넓고 배울 것 투성이었다. 삶에서 어떠한 큰일이 생겼을 때 나는 어떻게 대처할 줄 모르고 우는 아기새였다. 아직은 나 인생의 주인이 내나 자신이며,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른 척했다. 인생의 주도권을 갖고 싶어 하면서 그 무게가 무서워 가끔은 발을 빼고 얍삽해졌다.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워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 귀찮아서 흙을 던져 조금 덮어놓고 안심했다.

남들보다 일을 더 많이 해봤고, 고생도 많이 해봤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해 왔으면서도 아직도 난 깨닫지 못한 것들이 많을까. 왜 아직도 완벽하지 못할까, 왜 이 상황에서 대처를 못하는 걸까. 스스로 자문하고 대답하지 못하던 나날들이 참 많았다.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는 동시에 자존감이 낮다 보니 누가 나에게 지적을 하면 그게 본인에 대한 비난으로 돌아와 스스로를 참 힘들게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조금 다행인건, 지금은 내가 나에게 많이 관대해졌다. 처음부터 잘 해내지 못하고 남들보다 익히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시도하고 부딪혀 본 나에게 잘했다며 칭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시도조차 못해봤을 일들을 생각 없이 시작해 보기도 하고, 실패할지언정 그 실패를 용기 있게 겪어냈다는 사실에 의미부여가 가능해졌다. 무언가를 이루어 내려면 정말 많은 실패의 경험이 필요하다는 걸 이제야 조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문득 든 생각, 아 나 나이먹었구나. 

나는 호주에서 간호 Diploma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데, 실습과목에서 배우는 것들이 참 많다. 아직 처음이라 같이 공부하는 classmate들과 서로 뚝딱거리면서 연습을 하는데, 아무래도 병원에서 사용하는 기구라던지 환자를 대하는 프로토콜 등이 익숙하지 않아 실수를 할 때가 많다. 가끔 좀 엄한 선생님에게 잘 못 걸려서 집중 관리를 받기도 하는데, 그게 오늘이었다. 병원에서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환자를 가까운 거리 내에서 옮길 때 Hoist라는 기구를 사용하는데, 그 연습을 하는 과정이 자연스럽지 않아 한 선생님의 레이더 망에 걸렸다. 각각 한 번씩만 연습해보면 되는 부분을 더블로 연습해서나와 함께 연습했던 친구 두 명만 다른 사람들보다 한 시간을 더 연습하고 사인을 받아야 했다.

선생님마다 성격이 당연히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선생님은 조금 유동성 있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는 반면, 어떤 선생님은 학생들이 긴장할 정도로 무섭게 가르치기도 한다. 우리가 걸린 선생님은 조금 과하게 엄하게 하시려고 하는 선생님이었는데, 그래서 투머치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의 어릴 적을 생각해보면, 누가 이거 다시해와 라고 했을 때 보통 아 진짜 짜증 난다(상대방에 대한 비난) or 난 왜 이렇게 했을까(나에 대한 비난) 둘 중 하나가 자동으로 나왔었는데, 요즘은 어 내가 잘못했나 보네, 통과될 때까지 다시 해봐야겠다 가 되는 것 같다. 내 자존감이 높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이제 정말 내가 제대로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고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누구를 가르치고, 피드백 준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면 가르치려는 내용에 대해서는 완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봤을 때 무엇이 약점이고 어떤 것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캐치해야 한다. 또한 이 내용을 효과적으로, 감정적이지 않게 전달하는 것 또한 굉장한 노련함과 스킬,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를 깨닫기까지 참 오랜 시간일 걸렸던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참 다행인 것 같다. 그래서 선생님이 우리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남아서 집중 관리를 시킬 때,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저 사람들은 사실 우리를 대충 봐주고 일찍 돌아가 쉴 수도 있다. 굳이 자신의 권위를 입증한다던가, 경각심을 주기만을 위함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피드백 하나하나가 좋은 간호 인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 기여할 수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고, 그게 미래 우리가 정말 현장에 뛰어들었을 때 어떤 효과를 낼지 알고 있을 것이며, 이 하나하나의 노력이 호주 국민의 건강과 보건 복지를 향상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오는 행동일 것이다.

이 모든 결과의 이유가 뻔히 보이는 나는 정말 그 시간들을 겸허하게 받아들였고, 그래서 함께 연습했던 18살 호주아이가 불평하는 것을 보며 너무나도 뼈저리게 내가 나이 들었음이 느껴졌다. 너 나이때는 아무리 말해줘도 몰라, 하는 목소리가 가슴속에 울려 퍼지며 내가 골수까지 본 투 비 라테임을 다시금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피드백이 좋고 나쁜 피드백인지 알게 되었다.

이건 피드백을 어떻게 받느냐에 대한 것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은데, 누가 감정적으로 피드백을 하면 우선 이 사람의 지적이 타당한가를 먼저 살펴보게 된다. 아무리 타당한 피드백이어도 지적은 감정적이어서는 안 된다. 매번 그럴 수는 없기에 화가 날 때는 감정을 전달하되, 그 감정이 사적이지 않아야 한다. 한 때 정말 루드한 피드백을 주는 사람 옆에서 오랜 기간 일해 본 적이 있다. 원래 일을 못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당연히 능력치는 상승했으나 그동안 정신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짐을 겪어본 적이 있다. 하다 못해 2주를 쉬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는데, 누가 나에게 감정적인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한다면 그건 가스 라이팅이다. 널 위한 거다라는 허울 좋은 포장으로 감싸진 독극물이다. 자신의 부족함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는 자기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지만, 일정 수준의 선을 넘으면 그게 자기혐오로 이어질 수 있게 된다. 내가 실제로 겪었던 일이고,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좋은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 좇을 것. 그리고 나쁜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을 피할 것. 누가 나에게 합당하고 타당한 지적을하며, 나의 발전을 위해 본인들의 시간을 투자해 준다면 불평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 그리고 너도 그걸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될 것.

이게 오늘 나의 느낀 점이다. 여러분도 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면, 아마 당신의 인생에서 성숙함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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