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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리의 Brunch ]/새아리의 호주 생활 일기장

#15 워홀 후 학생비자를 신청한 사람의 현실 라이프 (feat. 의자 사다 현타 온 날)

by 새아리 2022.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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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9년 3월에 호주에 왔고, 워킹홀리데이로 2년 동안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딱 두 번, 농장에서 대대적인 호주 전 지역 흉작으로 시프트를 못 받아서 일을 쉬었을 때와 코로나 시국을 처음 맞이해 온갖 가게가 문을 닫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일을 거의 쉬어 본 적이 없었다. 학생비자를 신청하고 나서는 상황적인 제한 때문에 일을 그만큼은 못했지만, 학교를 안 가는 날은 어떻게 해서든 시프트를 따서 일을 했다. 바리스타 일을 배우려고 노력한 것도 바리스타가 어딜 가나 직업을 구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시티에 와서는 계속 안정적인 시프트를 받을 수 있었다.

학생비자 신청 전에는 돈이 정말 많이 든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실상은 생각보다 더 비참했다. 학생 비자 신청만 보험비까지 포함하여 약 2천 불이 들었고(호주 내에서 비자를 두 번 이상 신청한 이력이 있을 경우 비자 신청비 이외에도 700불 가량을 추가로 내야 한다), 나의 경우 1.5년치 Diploma 코스라 학비약 2만 불 정도 들며(Uni의 경우 대략 일년에 3만불 정도가 든다. 비자 연장용 학교의 경우에는 일년에 약 7천불~만불 정도가 드는 걸로 알고 있다), 입학을 위한 서류 준비 및 영어시험을 보느라 약 2천 불이 추가로 더 깨졌다. 2년 여의 학생비자를 갖는데 드는 비용이 약 2만 5천불, 한화로 2천만원 정도가 든 셈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일을 하기 위해 학생비자를 신청한 사람, 혹은 원래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학업 때문에 일에 지장이 생기더라도 별로 상관이 없는 사람 등 각자 사정은 다르겠지만, 나처럼 워홀러로 시작해 진짜 학교에 등록하여 정규코스를 밟는 사람(즉 본인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세이빙이 많지 않은 이상 해결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또 코스가 시작되면 학교를 가야 하니 일할 수 있는 날이 줄어들고, 제한된 availability가 있다보니 일을 정말 잘해야 시프트를 맞춰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일을 해도 주에 150~180불 정도 하는 렌트비를 꼬박꼬박 내야 하기 때문에 장보고 외식이라도 한 번 하면 수중에 남은 돈이 별로 없다. 세이빙이라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그래도 일주일에 적어도 800불 이상씩 벌던 워홀러 시절에는 들어오는 돈이 있으니 아무리 세이빙 목표가 있다 해도 조금은 여유 있게 살았는데, 지금은 그렇게 겨우겨우 모아놓은 돈을 학비로 다 쓰고 나면 생활비로 쓸 돈이 없어 계속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학기중에 주말 일을 하기 위해서는 과제도 미리미리 해두어야 하고, 남들보다 부지런해야 하며, 빈틈없이 계획하는 철저함도 필요하다. 사실 그래서 작년 코로나가 터져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을 때, 속으로 조금 기뻤다. 런닝머신 위에서 숨가쁘게 뛰다 드디어 한숨 돌리는 느낌이었다.

사실 나 같은 케이스가 그렇게 많은 건 아니다. 보통 커플로 학생비자를 신청하여 경제적 부담을 나누거나, 워홀로 시작하더라도 학생비자 때 부터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이민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진짜 나처럼 맨땅에 헤딩을 하는 인간은 거의 못 봤다. 고생을 하도 많이 하다 보니 나는 무슨 생각으로 학생비자를 신청한 걸까 싶다가도 희한하게 내가 원하는 대로 인생이 흘러가서 불평도 못하겠다. 그때는 별 다른 옵션도 없었다. 내가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호주에 처음 왔을 때부터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외국에 살 작정이었고 호주에 살다보니 여기에 있고 싶어서 요리를 배워 볼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시기 호주 요리이민은 거의 닫힌 거나 마찬가지였고, 차선책으로 캐나다에 워홀을 가서 돈이나 벌어 올까 하는 생각에 캐나다 워홀비자도 신청해 봤다(인비테이션은 못 받았다). 워홀기간 동안에는 예고 없이 개정되는 이민 법에 이민을 준비하는 지인들이 스트레스 받아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 왔는데, 그래서 내 학생비자를 신청할 때는 돈이 조금 더 들고 힘들더라도 안전한 길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게 간호 유학이었고, 다행히 유학을 준비하는 길이 순탄하게 흘러가서 EN(Enrolled Nurse) 과정(한국으로 치면 간호조무사 과정) 입학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게 아주 힘든 길이 될 거라는 걸 예상은 했지만, 실상은 생각보다 더 많이 힘들었다.

사람들이 외국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현타가 아주 많이 온다고 하던데, 외로워도 슬퍼도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하면서 3년을 버텼다. 그 동안 온갖 일을 다 겪어봤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참 웃긴 타이밍에 현타가 왔다. 6개월 동안 구매를 고민했던 사무용 의자를 온라인으로 보던 중이었다. 나는 소비습관이 좋은 편인데, 사고 싶은 게 있어도 바로 바로 사는 편이 아니라, 메모를 해 두었다가 이 제품이 필요한 것인지 오랫동안 고민한 후 구매하거나, 정말 이제는 사야 할 때가 되었다 싶을 때 구입을 한다. 화장품 같은 비필수품도 최소한으로 가지고 있고, 옷 쇼핑은 귀찮아서 싫어하는 편이며 굳이 가장 돈을 많이 쓰는 품목을 꼽자면 장보는 식비와 친구 만날 때 쓰는 외식비 정도. 남자 친구와도 비싼 레스토랑은 드물게 한 번씩 가고, 쓸데없이 돈 쓰는 일은 자제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정말 오랜만에 여행을 간다던가 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딱히 나를 위해 돈을 쓰는 일이 많지는 않다.

사실 지금까지는 일을 많이 해온 터라 책상 위에 앉아있을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의자가 불편해도 꾸역꾸역 참아 왔는데, 요즘 들어 블로그를 쓰다 보니 다시금 작년부터 느꼈던 의자의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또 학교가 개강하면 공부도 해야하고 과제도 해야 하니, 책상에 앉아 있을 일이 많아 질게 뻔한 터라 조금이라도 업무와 학업의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투자라고 생각하고 신중하게 구매를 결정했는데, 세일해서 300불이 넘는 의자를 배송비까지 약 250불에 구입할 수 있었다. 먹을 것 살 때는 그렇게 과감하게 사면서 저런 거 투자는 왜 이렇게 손이 떨리는지. 아직 내야 할 학비가 있어서 호주 통장과 한국 통장을 확인한 후 결제를 하는데, 내가 참 돈이 없구나 라는 게 새삼 느껴졌다. 나 스물 여섯인데. 젠장.

나는 스무 살 때부터 돈을 벌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부모님께 어떠한 명목으로도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아 시작한 불행의 시작이었다. 학자금 대출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일을 하면서도 성적 장학금을 받는데 미친듯한 노력을 가했고, 주말과 방학에는 일을 쉬어본 적이 없어 안 해본 알바가 없다.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사회의 쓴맛을 봤고, 밑바닥에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맛봤다. 다행히 그 경험들이 쌓여 호주에서 혼자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호주에 온 6개월 동안은 밤낮없이 일해 가지고 있던 1500만 원여의 학자금 대출을 다 갚았다. 그 이후에 세컨비자를을 따 연장한 기간동안 모은 돈은 지금 학생비자를 신청하고 학비를 충당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다.

내가 산 의자

그러다 갑자기 서러운 거다. 왜 난 7년을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살아왔는데 수중에 돈이 없나. 아마 내가 지금까지 번 돈을 다 모으면 호화롭게 유럽여행을 6개월을 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래도 어렸을 때는 나중에 돈을 벌 수 있는 시기가 올 거라고 생각해서 꾸역꾸역 참았는데 그렇게 고생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또 공부라니. 그래 공부는 괜찮다, 힘든건 일을 병행해야 한다는거다. 정말 간절하게 학교 다니면서 일을 6개월이라도 안해보는게 소원이다. 이 거지같은 걸 또 몇 년간 해야 한다고? 내 노력에 비해 이십 대 중반과 이십 대 초반의 상황이 같은 건 조금 억울하게 느껴졌다. 부모님 잘 만나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부러웠는데, 지금도 많이 부럽다. 

사실 난 안다. 내가 이렇게 겪어온 모든 것들이 나에게 결핍을 느끼게 하는 요소였고, 그게 내 삶을 열심히 살게 하는 원동력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는 걸. 그래도 내가 노동에 사용했던 그 시간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면 내 삶이 더 풍요롭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공부 외에 다른 것들에도 열심히 도전해 서로 다른 멋진 삶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내 대학 친구들처럼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었을 것이고,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들을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삶은 언제나 불공평한 것이기에 환경 탓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쉽다. 20대 초반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있는데, 그 시기에 조금 더 값진 경험을 더 해봤다면 좋았을 것 같다.

내가 항상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있다. 지금 내 삶이 구질구질할지언정 평생 이렇게 살기 위해 이렇게 사는 건 아니라고. 예전에는 노동이 곧 돈이기에 돈=시간이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든 내 가치를 높여 효율이 높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삼십 대는 그렇게 고생했던 20대와 분명히 다를 것이며 40대에는 돈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살고 싶다. 그렇게 하고 싶고,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때가 되면 힘든시기 날 보살펴 준 주변 사람들에게 열배배로 베풀고 싶다. 돈이 제약이 되지 않는, 내가 내가 될 수 있는 자유롭고 평온한 삶을 누리고 싶다. 그리고 나와 같은 젊은이들을 돕고 지원하면서 살고 싶다.

요즘에는 마음이 조금 힘들고 지치더라도 이렇게 마인트 컨트롤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징징대 봤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결국에는 나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는 길이기에. 성공한 사람,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의 그릇을 먼저 키워야 함을 느끼는데, 아무리 내가 벼락부자가 될 기회가 있더라도 내 그릇의 크기가 작다면 그 기회는 넘쳐흘러 날아가 버릴 것이다. 내가 먼저 내면이 큰 사람이 되어야 언젠가 찾아 올 큰 운을 붙잡고 도약할 수 있다.

큰 사람이 되자, 그리고 여기 낯선 땅에서 고생하는 만큼 크게 성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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