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부터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호주 워홀에서 외국인 남친 사귄 썰 - 2탄
그리고 그 다음 날 나는 예정되어 있었던 친구와의 여행을 갔다. 2박 3일간의 여정이었는데 여행하는 동안 A와는 계속 연락을 했다. 문자로 하는 연락은 조금 어색했는데, 이것도 오랜만에 해봐서 그런지 나름대로의 설렘이 있었다. A는 생각보다 러블리한 표현을 자주 사용했고, 내가 뭘 물어보면 내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자세하게 답변을 해 주었다. 예를 들면, 너는 친구가 많은가 보다! 하는 질문에 자기가 속해있는 그룹이 몇 개가 있고 각각 어떤 그룹인지 소개해줄 정도.. 이것 때문에 이 친구가 나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지 헷갈려서 호주인 남자 친구가 있는 언니한테 얘네는 원래 말을 이런식으로 하냐, 언니가 생각하기에는 얘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냐며 물어보기도 했다.
나는 사실 밀당하는 것을 안 좋아하는 성격이라 계속 들이박았는데, 그러다 보니 하루는 얘가 근데 우리 조금 너무 빠른 것 같애! 하고 이야기하더라. 이 말을 듣고 충격받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속상하긴 했는데 얘가 뭐 나한테 관심이 없어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원래 호주애들은 오래 보고 사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니 (우리나라처럼 1~2주 안에 고백하고 사귀는 게 아니라 정말 오랫동안 알아가는 시간을 갖고 진지하게 만남을 갖는 편이라고 함)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나는 확신이 있는 상태에서의 행동이었는데, 상대방은 아닐 수도 있으니까. 나도 사람인지라 서운한 마음은 들었지만 그냥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이 관계가 천천히 흘러갈 수 있도록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나도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A에게 연락을 할 수 있었다.
시드니에서 돌아오는 당일 도착시간은 저녁 9시였는데, A가 혹시 픽업이 필요하냐고 물어봤다. 고민이 되었다. 하루 종일 놀고 세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 화장도 미친 듯이 무너져 있을 텐데..... 두 번째 만남에 그 몰골로 보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까 생각하며 진지하게 한 시간 정도 고민을 해봤다. 그래도 기회가 있을 때 A를 더 보고 싶다는 게 내 마음 속에서의 결론이었고, 마음이 가는가는대로 하기로 했다. 그렇게 쌀쌀한 여름밤 나는 버스 터미널에서 A를 두 번째로 만났다.
A는 나를 보고 잘 갔다왔냐며 캐주얼하게 포옹을 했다. 그러나 그런 스킨십에 익숙하지 않은 토종 한국인인 나는 창피하게도 그 자리에서 약간 얼어버렸다. A는 내가 어색해하는 것을 느끼고는 금방 떨어져줬다. 나중에 사귀고 나서 A가 그때 많이 불편했냐고 물어봤었는데, 불편한 건 아니고 사귀는 사이에 포옹하는 건 한국인끼리는 좀 나중에 하는 스킨십이라 인사로 받아들이질 못했다고 하면서 오해를 풀었다. 말이 나온 김에 그때 한국인 커플의 스킨십 진도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손잡고 팔짱 끼고 포옹하고 뽀뽀 이런 식이다라고 설명함) 호주애이다 보니 좀 신기하다는 듯이 반응하더라. 하긴. 여긴 뭐 남녀 사이 처음 본 사이에도 키스하고 잠자리할 수 있는 호주니까, 이 친구와 만나면 이렇게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문화적인 차이가 있긴 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는 도시는 원래도 할 게 별로 없는 재미없는 도시로 평판이 자자한 곳인데 밤이 되면 더 할 일이 없다. 그래도 만났는데 뭐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근처에 밤까지 여는 푸드트럭을 가서 소시지와 아이스크림 튀김을 먹었다. 푸드트럭 콘셉트를 섹슈얼하게 잡은 곳(가게 이름부터가 G 'Spot이었다)이었는데 아이스크림 튀김을 남자 성기 모양으로 만들어줘서 당황스러웠다. 차를 안 더럽히려고 엄청 노력하면서 먹었는데 탄산음료가 빨대로 분수처럼 올라와 2차로 당황스러웠다. 그날 나는 방금 딴 탄산음료 캔에 빨대를 꽂아 먹으면 탄산이 미친 듯이 빨대를 타고 올라온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다행히 열심히 흡입한 덕에 차 안에 흘리는 건 막을 수 있었다.
야식을 먹고 어디 한적한 데 가서 이야기나 할까 싶어 가까운 산 쪽으로 드라이브를 가기로 했다. 둘이 가니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고, 우리처럼 밤에 드라이브 온 사람들도 조금 있었다. 야경명소로 오는 곳인데, 그때가 겨울 직전이라 좀 추워서 한 1분 정도만 구경하고 차로 다시 돌아왔다. 차에 돌아온 A는 나에게 Asking game을 하자고 했다. 내가 그게 뭐냐 물어보니 궁금한 것을 서로 돌아가면서 물어보는 거라고 하더라. 재밌겠다 싶어서 해보자고 했다.
A는 생각보다 진지한 질문들을 나에게 던졌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형은 뭔지, 미래 애인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데이팅 앱에 아기를 낳고 싶지 않다고 적었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지, 술은 얼마나 자주 먹는지 등등? 지금 생각해보니 조금 취조 같긴 한데 분위기상 그런 느낌은 아니었고 정말 나를 진지하게 알고 싶어 하는 느낌이었다. 하나둘씩 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제 굳이 질문을 하지 않아도 서로 이야기를 술술 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두 번째 만남에서, 언어적 장벽마저 있던 내게 그와의 대화는 마치 편안한 분위기의 라디오에 게스트로 초대된 느낌이었다. 산에 도착했을 때가 약 10시 반 경이었는데, 이제 슬슬 가볼까 라는 생각이 들 때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였다. 내가 누구랑 술 없이 이렇게 이야기만 하면서 새벽까지 지새 본 게 언젠가 싶었다. 서로 대화하는 것에 빠져있던 우리는 시간 체크도 한 번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큼 A와 이야기하는 건 참 재미있었다.
이제 집에 가자. A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 소리가 이상하게 나더니 차가 꺼졌다. 이상한데, 하며 한 번 더 시동을 걸어봤다. 또 차가 안 켜졌다. 우리는 찐으로 당황했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A는 본인의 절친들이 있는 단톡방에 구조 요청을 날렸지만 사실 모두가 열 시면 잠에 드는 호주에서 새벽 두 시에 깨어 있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암담했다. 답장은 금방 오지 않았다. 다른 친구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그 친구는 자다 깬데다가 다음날 출근을 해야하는 상황 때문에 오기가 힘들어 보였다. 우리는 구조요청을 포기하고 우버를 불러서 집에 갔다가 다음날 다시 차를 가지러 오기로 했다.
그때 단톡방에 깨어있는 친구 한 명이 답신을 줬다. 다행스럽게도(?) 게임 중독인 친구라 그 시간까지 열심히 게임을 하다 메시지를 읽은 모양이었다. 30분 후 그 친구는 차의 배터리를 일시적으로 소생시킬 수 있는 점핑 케이블을 가지고 그 야산까지 와주었고, 처음으로 두 번째 만난 남자의 친구를 보기에는 꽤나 민망한 상황이었지만- 사람의 도리가 있지 창피함을 무릅쓰고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우리는 새벽 네시쯤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많이 피곤하긴 했지만 A의 반응은 나와 비슷했다. 너무 졸린 것 빼고 재밌긴 했어. 우리가 언제 또 이런 상황을 겪어 보겠어, 하며 돌아오는 길은 꽤나 즐거웠다. 그 날 이후 A와 나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우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이라도 매일 같이 만나고 연락하기 시작했다.
3부에 계속 ->
'[새아리의 Brunch ] > 새아리의 호주 생활 일기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15 워홀 후 학생비자를 신청한 사람의 현실 라이프 (feat. 의자 사다 현타 온 날) (2) | 2022.01.28 |
---|---|
#14 호주 워홀: 외국인 남자친구가 생겼다 - 3탄 [얼떨결에 받은 고백] (10) | 2022.01.18 |
#12 호주 워홀 : 외국인 남자친구와의 첫 만남-1탄 [데이팅 앱으로 남자친구 만난 썰] (4) | 2022.01.16 |
#11 하루 만에 블로그 애드센스 승인! 와후! (2) | 2022.01.02 |
#10 해외 생활 3년이면 나도 요리왕 - 외국인이 좋아하는 한식 추천 (2) | 2021.12.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