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팅 앱으로 호주 남자 친구 만나게 된 썰 1탄
오늘은 호주에서 만나 1년 가까이 연애를 하고 있는 현재 남자 친구를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사실 나는 워홀로 호주에 처음 오게 되었고, 2년이란 시간을 일만 하면서 보내며 연애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내왔었다. 일하며 만났던 한국인 중에는 괜찮은 사람이 없었고, 외국인 친구들을 만날 기회는 있었지만 이성으로써 관심 가는 사람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때는 외모에도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았었고, 굳이 이성친구를 만들려는 노력 자체를 안 했던 것 같다. 젊을 때 무슨 시간낭비냐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사실 전에 했던 오랜 연애에 너무 질려버린 상태여서 누군가와 진지한 만남을 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것도 큰 몫을 차지했다. 그때는 사랑이라는 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식어버리는 무형의 존재인 건 아닌지 하는 회의감 마저 들고 있었을 때였기 때문이다. 내가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했을 때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이 나를 위해 굉장히 기뻐해 주었었는데, 주변 친구들도 내가 누굴 만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인지 어떻게 지금 외국인 남자 친구를 만나게 되었는지 굉장히 궁금해하더라.
이제와 서야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스물넷에 호주에 와 홀로서기를 해야 했던 첫 외국 생활은 정말이지 생각보다 많이 외롭고 힘들었다. 스스로 이겨내 보려고 많은 노력을 해 왔고, 자기 암시도 하며 꿋꿋이 버텨왔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내가 성격이 많이 여리고 사람에게 상처를 잘 받는 타입이라 누군가 기댈 곳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 같다. 나이를 더 먹어도 사회생활을 통해 겉으로 행동하는 것이 조금 더 어른스럽게 바뀌었을 뿐이지 속 안에 있는 본질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더라. 남들이 보기에 나는 보기보다 일찍 철이 들어 열심히 아이였지만, 진짜 나의 모습은 혼자서 하루에도 열 번씩 울기도 하고 별거 아닌 말에도 쉽사리 상처받는 미련 곰탱이였기 때문이다.
호주 워홀을 한 지 약 2년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내가 누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 생각난 것이 바로 데이팅 앱이었다.
데이팅 앱이라, 얘기로 듣기만 들었지 사용해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틴더는 너무 유명하고 원나잇용으로 많이 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다른 앱을 사용해 보고 싶었다. 그나마 사람들이 다음으로 많이 사용하는 것이 '범블(Bumble)'이라는 노란색 로고의 앱이었고, 밑져야 본전이지 라는 마음으로 다운로드를 했다.
내 프로필 사진과 나에 대한 설명을 쓰는 것은 굉장히 어색했다. 어찌 보면 시장에 판매할 물건을 내놓아야 하는데, 어떻게 포장을 할까에 대해 생각하는 느낌이랄까. 데이팅 앱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외모를 보고 호감이 가냐 안 가냐가 매칭 가능성을 결정짓다 보니 조금 긴장도 됐다. 뭐 엄청나게 많은 설명을 적지는 않았고 앱에서 기본으로 설정할 수 있는 정보들을 입력했다. 직업은 무엇인지, 술 담배를 하는지, 아이를 낳고 생각이 있는지, 키는 어느 정도 되는지 등등.
범블에서는 서로 상대방을 오른쪽으로 스와이프 하면 매칭이 되는데, 매칭이 된 후 24시간 내에 대화를 하지 않으면 매칭이 사라지게 된다. 범블에도 여러 가지 유료 기능이 있는데, 결제를 하면 내가 오른쪽 스와이프를 하기 전 나를 먼저 스와이프 한 상대방을 볼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한 달 정도를 결제했고 (한 달 이상 이 앱을 사용하기는 싫었기 때문에 한 달만 결제했다.)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당연하게도 매칭 성공률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웃픈 사실은, 사진 몇 장과 간단한 정보 외에 나에 대해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은 거의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라는 (데이팅 앱에서는 상당히 메리트가 되는) 이유만으로 나를 스와이프 한 사람들은 꽤나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초반에는 약간 콧대가 높아지기도 했다는 것은 안 비밀이다. 다시금 우성 유전자가 자신의 자손을 보존하고 생태계를 유지하는 자연의 섭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앱을 사용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된 사실인데, 개인적으로 나는 백인에게 매력을 많이 못 느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나마 좀 깔끔하게 생긴 애들은 괜찮은데 하얗고 털 많은 사람을 만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중동 사람도 내 취향이 아니었고 그나마 만나 볼 만하겠다 싶은 아시안 남자들은 전체 풀의 5퍼센트 정도밖에 안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매칭 성공률은 점점 줄어들었고 (심지어 대화를 해보지도 못했다) 눈이 높은 것도 아닌데 이러다가는 단 한 번 만남의 기회조차 갖질 못하겠구나 싶어 울며 겨자먹기로 조금 눈을 낮춰보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별 다른 진전은 없었다. 앱을 사용한 지 일주일 정도 되던 즈음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점점 사라지고 그냥 다른 업데이트가 있나 하여 심심할 때마다 앱을 갖고 놀았다. 그러다 매칭 목록에서 색깔이 다른 한 사람을 보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노란색으로 테두리가 되어있었는데 얘만 빨간색이었다.
이게 뭐지 하고 보니 24시간 안에 매칭이 안 될 경우 상대방이 시간을 더 벌어보기 위해 시간 연장 기능을 사용한 것이었다. 사실 다니는 짐에서 왔다 갔다 많이 본 애였는데 (편의상 A라고 지칭하겠다), 어느 나라 애인 지는 모르겠고 아시아인 + 김종국 같은 근육맨 + (근육 과시용 인지) 민소매 보다도 더 가슴 쪽이 파인 ('singlet'이라고 한다) 옷을 입고 다녀서 유교 걸인 내 눈에는 조금 보기가 불편했던 애였다(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미안하긴 한데 그땐 그게 진심이었다). 그래서 (전략상 눈을 낮춰 스와이프를 한 덕분에) 매칭이 되기는 했지만 딱히 적극적으로 얘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던 던 아이였다. 눈에 띄게 보이는 그 빨강 테두리 안의 프로필은 정말이지 거슬렸다. 대화를 해볼까 말까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얘는 도대체 뭔데 나한테 말을 안 걸고 시간을 연장하지? 관심 있으면 대화를 먼저 해야 하는 거아닌가?] 라는 괘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참다 못한 나는 말을 걸기로 결심했다.
생김새가 좀 한국인 같이 생겨서 한국인이냐고 물어봤다. 아니랜다. 나를 헬스장에서 봤다고 했다. 사실 나도 몇 번 봤는데 본 적 없다고 뻥쳤다. 나도 여자라고 본능적으로 좀 튕기고 싶었나 보다. 호주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나에 대해 물어보는데 생각보다 말이 술술 잘 오갔다. 아니 남자애랑 말이 이렇게 잘 통할 리가 없는데. 이게 뭔게 이렇게 잘 흘러가지? 신기해하며 대화를 이어나가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짐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창피해서 아는 척은 못했다), 신기하게도 안 좋았던 첫 인상은 온데간데 없고 뒷모습이 좀 괜찮아 보이더라. 하루 사이에 다르게 느끼는 나도 나 자신이 좀 어이없었다. 같이 언제 시간이 나면 점심을 먹자길래 그냥 덥석 물기로 했다. 나 내일 아니면 여행을 잠깐 다녀와야 해서 며칠 있다가 만나야 해. 내일 시간 되면 볼래? 하고 약속을 잡았다. 얘를 안 만나보면 좀 많이 후회할 것 같아서였다.
다음날 내가 가고 싶었던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고, 워낙 길눈이 어두운 길치라 내비게이션 보고 찾아갔는데도 길을 잘못 들어 십 분을 늦었다. 어찌 일찍 왔는지 카페 안 구석자리를 잘도 맡아 두었더라. 조금 어색하면서도 환하게 인사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 진짜 헬스장 걔네. ]하면서 속으로도 실감이 잘 안 났다. 내가 긴장하면 말을 많이 하는 편인데 생각해보니 삼 년 동안 남자랑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해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떠오르면서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사실 어제 내 영어실력이 부족해서 너랑 말을 잘 못할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느니, 안 그래 보이지만 지금 엄청 떨리다느니 하는 약간 이불 킥 용의 쓸데없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생각나는 대로 내뱉었던 것 같은데, 다행히도 A는 내가 편하게 느낄 수 있게 괜찮다고, 지금 다 알아들을 수 있다며 용기를 줬다. 덕분에 부담을 많이 덜 수 있었고, 모자란 영어로나마 꾸역꾸역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진짜 어이없는 게 내가 주변 사람들도 알아주는 대식가인데 그날 저 팬케이크 시켜놓고 한 입 먹었다. 그리고 커피는 아이스 롱 블랙으로 두 잔이나 들이켰다. 웃기지만 너무 긴장을 해서인지 밥이 안 들어가더라. 걔가 자기가 시킨 메뉴 나눠줘서 그거 조금 맛봤다. 내 인생 밖에서 밥을 시켜놓고 그렇게 조금 먹어본 건 처음이었다. A가 봐도 너무 못 먹는다 싶었는지 원래 이렇게 조금 먹냐고 하더라. 내숭 떨기 싫어서 나 원래 밥 많이 먹는데 긴장해서 못먹는 거라고 솔직하게 이야기 했다.
(여담이지만 그는 나중에 내가 마라탕을 대자로 먹는 걸 보고 매우 놀랐다고한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이야기를 하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얘랑 엄청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만나면 참 진지한 사이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밥 값을 본인이 내겠다고 하길래 다음에는 내가 살게 라는 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약속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내가 걔 쪽으로 몸이 기울었는데, 나는 벌써 얘를 마음에 들어 하는구나 하고 속으로 혼자 깨달아 흠칫 놀랐다.
밥 먹고는 할게 딱히 없어서 호수에 가서 한 바퀴 걷기로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걷기를 정말 싫어하는 애였는데, 그땐 불편한 사이여서 그런지 불평 없이 잘만 걷더라. 근처 호수를 돌면서 서로에 대해 많은 걸 물어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본인이 나온 대학교도 근처에 있어서 전동 스쿠터 (우리 동네에는 앱으로 이용할 수 있는 public scooter가 있다)도 탔다. 그날은 날씨도 참 좋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모든 게 완벽할 수 있지? 올해 받을 운을 다 쓴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기분이 붕 뜨고 신기했다.
내가 저녁에 일을 하다 보니 4시까지는 집에 돌아갔어야 했고, A가 집까지 데려다줘서 여유 있게 돌아갈 수 있었다. 헤어지기 전에 어떻게 연락할 거야? 하고 물어봤는데 인스타그램 계정을 물어보더라. 나는 왜 번호를 안 물어보고 인스타그램을 물어보지 의아했는데 이게 얘네 사이에서는 번호 주고받는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아무튼 나는 또 성질머리가 급해서 번호를 물어봤다. 생각해 보니 내가 내 이름을 말한 적 있나 싶어서 너 내 이름 알아? 했는데 걔도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는지 이름 철자 두 개를 바꿔서 말하더라. 노발대발하며 고쳐줬는데 자기도 긴장해서 잘 못 말한 거라고 했다.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내가 화장할 때마다 내 이름 두자를 바꿔서 부른다. 그때 모습이 화장한 모습이라서.
집에 돌아와서 잠깐 침대에 앉아있는데 머릿속이 멍했다. 꿈을 꾼 것 같았다. 내가 오늘 뭘 한 거지? 하면서도 앞으로 나에게 좋은 일만 일어날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 친구에게 먼저 오늘 고마웠다고, 재밌었고 다음에도 만나고 싶다고 문자를 보냈고 그 A도 시드니 여행 잘 다녀오라는 답장을 보내줬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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