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사는거 어때?
한국에 있는 오래된 친구들이 가끔 묻는다. 내가 호주에 온 지 1~2년쯤 되었을 때에는
"어 엄청 좋아. 미세먼지도 없고, 여유롭고, 사람들도 좋아. 나는 여기 살고 싶어!"
라고 대답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 누군가 나에게 호주에서의 삶이 어떻느냐하고 묻는다면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지 뭐. 좋은 점도 많지만 불편한 점도 생각보다 많아. 그래도 난 한국이랑 호주 둘 중 하나 고르라고 하면 호주를 택할 것 같아."
라고 대답한다. 세세하게 따지면 정말 불편하고 이해 안가는 부분도 많지만, 그 단점이 그대로 장점이 되는 나라. 사람마다 각자 맞는 성향이 있기에 호주에 아무리 오래 있었어도 결국에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꽤나 있지만, 한국에 있을 때 내가 정말 싫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호주에서는 나를 더이상 괴롭히지 않는다 라는 점이 나를 악착같이 호주에 남게 할 이유를 주었다. 이 부분은 남자친구에게도 꾸준히 이야기해 온 부분인데, 내가 "나는 호주가 너무 너무 좋아서 있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는 도저히 평생 못 살 것 같아서 호주에서 살기로 한 거야."라고 수없이 이야기했던 것 같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처음에는 마냥 이해가 가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그였으나, 나와 함께 살면서 한국문화에 대해 더욱더 깊이 알게 되고, 그제야 내가 싫어하는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 보인다고 이야기하더라.
하지만 누가 뭐라해도 한국은 내 나라이다. 코리아에서 왔어요~ 하면 중국, 일본과 비슷한 아시안계라고 받아들여졌던 예전과 다르게 지금은 내가 한국 출신인 것을 아는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줄줄이 질문을 할 정도로 글로벌 사회에서 위상이 꽤나 높아진, 정말 짧은 시간 대단한 발전을 이룩한 자랑스러운 내 조국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좋고, 한국의 문화와 음식, 음악, 악착같은 국민성을 꽤나 대단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아직 한국이 '찐 선진국'이 되기에는 노력해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기술적인 발전을 너무 빠르게 해 온 만큼 문화적인 것과 의식 수준이 따라잡지 못해 생긴 사회의 부작용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분이 해결되기까지는 조금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한다(사실 그 전에 한국인이 멸종될 가능성이 더 커 보이긴 한다;). 그래도 요즘에는 소셜 미디어의 영향으로 한국의 자기 객관화가 참 많이 발전했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요즘 세대는 이러한 부분을 걷어내고 고치려는 노력을 많이 보이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호주의 장점을 이야기 하기에 앞서 한국 사회에서 내가 싫어하는 점을 먼저 뽑아보겠다. 슬프게도 한국 사회에서 내가 느낀 단점들의 부재가 호주 살이의 장점으로 와 닿았기 때문이다.
첫째, 남 눈치 보는 문화는 전 세계 어딜 가나 있지만, 호주에 와보니 한국이 유난히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호주 사람들은 잠깐 어디 밖을 나갈 때 아무리 사람 많은 곳이어도 입던 운동복 입고 가고, 여자들이 메이크업 없는 얼굴로 돌아다니는 것도 정말 흔한 일이며, 남이 무슨 패션을 어떻게 입던지 신경도 안 쓴다. 데이트할 때조차 편안한 복장으로 함께 영화를 보거나 밥을 먹으러 가는 커플을 보는 것도 정말 흔하다. 처음에는 여자들이 '왜 데이트할 때도 화장을 안 하고 오지...?'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여기에 살다 보니 특별하게 드레스업 할 일이 아니면 이성끼리 편하게 보는 경우가 정말 많은 것 같다. 나도 다수의 친구들을 남자친구와 함께 만나거나 특별한 기념일 데이트를 하는 날에만 함께 차려입고 나가고, 평소에는 집에서 입는 옷을 입고 밖에 나간다. 정말 초췌하게 마트를 가도, 직장에 피부화장 하나 없이 가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고 지적하는 사람도 없다 (물론 직장에 따라 분위기가 조금 다를 수는 있겠다. 나는 간호사다 보니 다들 바빠서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오피스 잡은 조금 더 포멀하게 입고 화장도 다들 어느정도 하고 가는 편인듯.).
이런 생활을 오랫동안 해오다보니 단장을 위해 쓸데없이 돈과 에너지 소비를 할 일이 줄어들고, 기능성에 좀 더 집중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더라. 새 옷과 화장품을 쓸 돈으로 운동을 하러 가고, 좀 더 비싸고 질 좋은 재료들로 장을 보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활동들에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돈 없던 대학생 때 올리브영 VVIP였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의미 있는 변화다. 요즘에는 화장품 쇼핑을 일 년에 한두 번도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내면이 건강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호주 사람들이 아예 뷰티산업에 관심이 없는 것은 전혀 아니다. 여기도 다들 열심히 피부과 시술 다들 받으러 다니고, 보톡스, 리프팅, 성형 수술 크고 작게 많이들 한다. 다만 한국만큼 여성의 꾸밈을 대해 사회적으로 장려/권고하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강남에 대문짝만 하게 붙어있는 성형외과 광고를 보고 충격이었다는 호주인 친구의 말이 참 크게 와닿더라.
두 번째, 성차별 (SEXISM)- 사실 이것이 내가 호주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인데,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고 싶은 여성으로서 한국에서 결혼과 함께 내 커리어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참으로도 어렵게 느껴졌다. 단순하게 사회적으로 한국 남성이 여성보다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같은 조건에서 여성이 남성처럼 결혼, 출산 후에도 직장에서 그대로 자리를 유지하며 오랫동안 근무를 할 수 있는 사례를 드물게 보아왔기에, 한국에서 결혼은 사실 꿈도 꾸지 않았던 것 같다. 예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부모세대는 다 감내하고 살았느니, 군대도 가지 않으면서 무슨 성차별 이야기를 꺼내냐느니, 출산 후에도 오랫동안 일하고 있는 여성도 많다느니 참 반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 출생률이 전세계 최저(사실상 한국인 멸종 직전이라고 전 세계에 보도된 상태)으로까지 내려간 것을 보면 이제는 다들 무언가 깨달아야 할 때가 한참이나 지난 것이다. 국가가, 정부가 또 사회적 분위기가 여성에게 출생률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겨누는 동시에 아이를 낳을 환경을 마련해 주지 않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내가 느낀 호주 내에서의 분위기는 사실 확연히 달랐다. 물론 고학력 여성이 많아지면서 여성의 첫 출산연령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는 점에서는 비슷한 점이 많지만, 여전히 서른 이전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거나 계획하고 있는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이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욱이 국가가 열렬히 지원해 준 결과라는 것이 피부에 와닿는다. 직장에 따라 상황은 많이 달라질 수 있으나,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는 12개월 이상 풀타임 근무를 한 경우 출산휴가를 유급으로 4개월 반을 지급받으며, 그 이후로는 12개월을 무급으로 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 알바니즈 정부는 현재 유급휴가 기간을 2026년까지 점진적으로 늘리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도 한다. 충분히 휴식을 갖고 어느정도 안정이 된 시기에 다시 직장에 돌아와도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리는 보장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안정감은 결혼과 임신에 대해 단념하고 있던 나에게도 임신과 출산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볼수 있게 되는 계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호주 사회는 는 워낙 여러 인종이 사는 나라이다 보니 '차별'에 대한 민감도가 엄청나게 높은 편이다. 누가 직장에서 성차별,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다면 그것은 불법행위이고, 당연히 형사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 호주에서는 이러한 차별문제를 처리하는 기관이 따로 있고, 이러한 부분에서 개인에 대한 존중과 인정이 사회적으로 참 잘 인식이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한국에서는 무지함에서 비롯한 무례함을 상대방에게 선사하는 경우가 정말 많은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명절 잔소리,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외모에 대한 지적 (특히 뚱뚱함에 대한 지적 - 여기서는 'Fat shaming'이라고 한다), 직장에서의 수직관계를 이용한 무례함 등등이 있겠다. 호주에서 누군가에게 면전에 대고 외모에 대한 지적을 듣는 경우는 정말 정말 드물다. 한국에서는 부모님, 가까운 친구, 혹은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머리가 어떻니, 화장이 어떻니 옷이 어떻니 칭찬이나 지적을 받는 일이 정말 정말 많았는데(예를 들면 "넌 ~만 하면 정말 예쁘겠다" 등등), 호주에서는 상대방의 외모에 대해서는 좋은 것이 아니면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야기 해도 오늘 귀걸이나 화장이 정말 예쁘다거나, 착장이 정말 잘 어울린다 이 정도만 언급하는 정도고, 이마저도 엄청나게 과하게 하지도 않는다. 아마 누군가의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게 좋은 말이던 나쁜말이던 상대방이 자신의 외모를 신경 쓰게 된다는 것, 그 사람의 능력이나 성과가 아닌 외모에 대한 과한 칭찬은 그렇게 달갑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 칭찬받는 누군가의 옆에서 소외감을 느낄 사람에 대한 고려가 포함되어 있는 사회적 인식이 이러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넷째, 한국은 시간에 미쳐 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뭐든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에 미쳐있다. 모두가 열심히 일하고,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비난받는다. 이게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인데, 장점은 물론 빠른 발전을 이룩해 낸다는 점, 단점은 그렇게 일을 하는 동안 심적으로 병을 얻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자살률이 정말 높은데도 불구하고 정신과 진료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좋지 않은 것은 참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 들 중 하나이다. 호주는 그 특유의 여유로움이 있다. 그 여유로움이 공공문서나 행정을 처리할 때에는 너무나도 오래 걸린다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바로 돌아오긴 하지만, 한국에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유난히 날 서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조금이라도 피해를 보려고 하지 않으려고 했던 사회적인 분위기가 분명히 있었다. 호주에서는 음식이 잘못 나와도, 서빙에 시간이 조금 걸려도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고, 정말 심한 문제가 아닌 이상 사람들이 딱히 불만을 표출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사람이 일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많이 보편화가 되어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런지 근무 환경도 훨씬 덜 타이트하고, 노동력의 값이 비싸지만 그만큼 노동에 대한 존중이 범사회적으로 깔려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어딜가나 환영받고, 게으른 호주인들처럼 일하는 사람들은 어딜 가나 욕먹는 건 불변의 진리다. 호주인들도 그지 같이 서빙하는 레스토랑에 가면 구글에 욕 달고 다신 안 간다.
사람마다 경험과 느끼는 바는 다르기에 반박은 뭐 딱히 해도 저는 안받겠습니다 히히
물론 험하디 험한 이민 생활 단점도 많고, 살다보면 지금은 이랬던 제 생각도 달라질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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