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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리의 Brunch ]/새아리의 호주 생활 일기장

#26 호주 사람들의 친절이 바꾼 나의 하루와 삶의 태도

by 새아리 2025.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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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나에게 최악의 날이자, 최고의 날이었다. 

절망 같은 일들이 두 번이나 일어난 날이었지만, 내가 언제 액땜을 제대로 한 적이 있었나, 이렇게 운이 좋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호주 사람들의 보은을 입은 날이었다. 호주사람들, 특히 캔버라 사람들이 친절한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들의 친절이 이만큼이나 강력했어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마음에 와닿더라. 호주에 살면서 정말 의미 있는 날을 경험한 이번 주, 이 생생한 감정과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이 글을 꼭 써보려고 한다.

나는 올해로 호주에 산지 약 6년이 넘어가는데, 사람들의 환상과는 다르게 호주라고 다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래 호주살이 단점 포스팅 참고)

 

#25 나 호주살이 6년차, 이제 단점을 말해보지 - 호주 생활 불편한 점 5가지

이전 포스팅에서 이제 호주의 장점을 많이 읊었으니, 단점도 이야기해 볼 차례다. 내가 너무 우리나라만 깠다고 생각하지 말길^_^  #24 내가 호주에서 살기로 한 이유 : 한국인이 느끼는 호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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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는 호주 사람(찐 백인)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렇게만 말하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데, 모든 인종을 골고루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굳이 따지자면 어떠한 인종을 더 싫어하고 덜 싫어하는 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쓰고 보니 무슨 인간 혐오자 같지만 해외에 오래 거주하신 분들이라면 내가 무슨 소리 하는지 대충 알 거라고 생각한다. 호주에서 살다 보면 정말 다양한 인종과 출신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사람마다 느끼는 바는 다 다르겠지만, 각 인종마다 두드러지는 뚜렷한 특성이 있고 장단점이 극명하다. 그래도 지금까지 많은 시간 한국인 이외 여러 인종(호주인 포함)의 친구들과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한 나로서는 체감되는 문화적 장벽이 생각보다 너무 커서 당황한 적이 꽤나 많았다. 한 번은 그래도 호주에 왔는데 노력으로 이겨내야지, 어떻게 아시안 사람들이랑만 노나 - 하는 생각에 큰맘 먹고 백인들이랑 놀러 갔다가 기가 빨려 한동안 사람을 좀 적게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참고로 나는 혼자 노는 거 싫어하는 ESFJ다.

뭐랄까 같이 일하라고 하면 일은 할 수 있는데, 일 끝나고 따로 만나서 놀라고 하면 서로 관심사와 문화차이가 너무 커서 재미도 없고 말도 잘 안 통하는 느낌... 그래서 내 주변에는 아시아계 (호주 태생의) 친구들이 많은데 (이건 내 파트너의 영향이 굉장히 크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 친구들은 내가 잘 맞아하는 인터네셔널 친구들의 특성 + 본토 호주인들의 장점이 잘 어우러져 있고, 분위기 자체가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 영어를 잘 못하던 시절에도 마음 편하게 이야기하며 친해진 친구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존재하는 언어적 +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같이 여행도 가고 따로 만날 정도로 편한 사이가 되기까지는 3년 남짓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나중에 이 친구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면서 영어가 모국어인 이들조차도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찐 호주 백인들과는 어울리는 것이 100% 편하지만은 않다고 하는 고백을 듣게 되었고, 내 영어가 문제가 아니었구나... 하는 약간의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사실 없다고는 할 수 없음).

아무튼 영어 못하는 한국인이 호주 사회에 적응하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순탄지만은 않았다는 투정을 좀 해봤다. 그래서 편견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터득한 경험이 있다보니 나 자신이 백인들과는 베프까지 되기는 어렵겠구나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아서 굳이 백인들과 꾸역꾸역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지는 않는 편이다.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이 글이 호주인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 호주에 사는 것이 마냥 최고라고 할 수 없지만서도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내가 호주에 계속 살게 하는 이유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호주 사회의 장점에 대해 설명한 이전 포스팅과도 일맥 상통한다. 

 

#24 내가 호주에서 살기로 한 이유 : 한국인이 느끼는 호주살이 장점

2024.12.03 - [[새아리의 Brunch ]/새아리의 호주 생활 일기장] - #25 나 호주살이 6년차, 이제 단점을 말해보지 - 호주 생활 불편한 점 5가지호주 사는거 어때?한국에 있는 오래된 친구들이 가끔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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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같이 바쁜 아침이었다. 우리 병동은 외과 병동이라 간단한 수술 후 당일 퇴원 혹은 익일 퇴원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편인데, 나도 이제 2년 차라 의사 별로 케어/퇴원 루틴이 어떻게 되는지 정도는 감을 다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익일 퇴원하는 수술 중 하나가 비염 수술인데 (FESS : Functional Endoscopic Sinus Surgery), 보통 하루 정도 출혈을 지켜보고 다음날 아침 일찍 출혈을 막기위해 넣어 둔 거즈를 나이트 간호사가 퇴근 전 뺀다. 이후 딱히 별 문제가 없으면 오전에 퇴원이 진행되는데, 하필 그날 내가 맡은 환자가 내가 지금까지 본 환자 중 가장 어린 환자였다. 16살의 소년(편의상 가명으로 Aiden이라고 부르겠다) 치고는 덩치가 좀 있는 소년이었는데, 외과병동에 사립 병원이다 보니 응급 환자는 보통 없고, 보통 예약된 수술을 한 사람들만 맡게 되는 편이라 환자의 나이대가 60대 이상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20~30대 환자들만 해도 열 명 중 한 명 꼴이니, 십 대 환자는 이런 비염 수술 같은 특정 수술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아무튼 나이트 근무자에게 인계를 받을 때의 Aiden의 상태는 굉장히 좋아보였고, 그 당일 퇴원하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바쁜 데이근무라, 몸과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최대한 빨리 일을 처리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던 중이었다. Aiden의 방에서 벨이 울렸고, 가서 확인을 해 봤다. Aiden은 "내 코에 뭐가 있는 것 같아" 하며 봐달라고 부탁했다. 코 안에 어떠한 플라스틱 같은 것이 있었고, 머릿속으로는 분명히 나이트 근무자에게 거즈가 아침에 제거되었다고 인계를 받았는데, 어떤 이물감이 느껴진단 말인가- 하면서 의아했다. 이때 선배 간호사들을 데리고 와서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나는 이게 나이트 근무자의 불찰로 미처 빼지 못한 팩이라고 생각했다. 변명을 하자면, 그날 근무했던 나이트 근무자가 우리 병동 정규 근무자가 아니었고, 에이전시에서 온 간호사였다는 사실이 한몫을 했다. 아무튼 나는 확신에 찬 태도로 "내가 제거 안된 부분 제거해 줄게" 하고 핀셋을 가져와 코 안에 있는 플라스틱을 제거했다(다시 쓰고 봐도 또 미친 것 같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저지른 가장 큰 실수였다.). 제거는 정말 쉬웠고 환자도 통증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내가 지금까지 봐온 것들과는 모양이 조금 달랐다. 간담이 서늘해져서 제거된 파트를 선배 간호사들에게 보여줬다. 그들도 이렇게 생긴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게 도대체 뭘까 하면서 얼른 Surgeon에게 연락을 해보라고, 이렇게 쉽게 빠지는 거면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닐꺼라고 위로하며 조언했다. 수간호사에게도 이 부분에 대해 바로 리포트를 했고, 수술한 의사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환자에게 다른 통증이 있는지, 경과가 어떠한지 살피고 바쁜 일들을 처리하고 있던 중이었다.

Surgeon에게 연락이 왔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이 의사를 본 적이 종종 있었는데, 인상이 좋고 간호사들에게 잘 화내지 않는 아시안 의사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화기 너머로 그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묻는데 죄송하다고 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면목이 없었고, 의사는 일단 환자의 출혈 경과를 보아야 하니 하루정도 더 병원에 머물게 하면서 지켜보자고 했다. 이 때문에 우리 수간호사가 욕받이를 해야 했다. 상황을 알고 있기에 멘붕의 멘붕이었지만 나에겐 주어진 다른 환자들도 있기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바쁜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생각해 보면 그날 매니지먼트의 혼선 때문에 안 그래도 같이 일하는 파트너가 두 시간 늦게 시작했고, 머릿속의 과부하가 일어나기 직전이었는데 그게 멍청한 logical process가 형성되는 데 한 몫하지 않았나 싶다(그래서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간호사의 근무환경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최대한 정직하고 투명하게 이 상황에 대해 환자와 환자의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퇴원을 앞둔 환자가 이유 없이 하루 더 병원에 있어야 할 이유는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감사하게도, 그들은 정말 chill 한 사람들 중 chill 한 사람들이었다. 침착하게 말하려고 애쓰는 내 표정 뒤 불안함과 미안함을 읽었는지, 환자와 환자의 부모님은 괜찮다고, 사람이 실수할 수 있는 거 아니겠냐며 하루쯤 더 있는 거 일도 아니라고 너무 감사하게도 내 사과를 받아들이셨다. 이때 나는 이게 가능한 상황인가- 감사하면서도 너무 의아했다.  이게 만약 한국이라면? 아니 한국이 아니라도 다른 환자였다면 이렇게 이 일이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었을까? 마치 로또에 맞은 것 보다도 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란련 이런 실수를 하고도 환자 복이 이렇게 좋다니...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또 감사했다.

결국 의사는 재 수술을 결정했다. 수술에서 큰 부분은 이미 진행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 격벽이 되는 플라스틱을 다시 코 안에 집어 넣고 꿰매는 부분만 하면 되긴 했지만, 수술방과 마취과의사, 스태프를 다시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상 민폐 중 민폐를 끼친 거나 다름없었다. 같이 일하는 간호사들과 수간호사가 나를 위로해 주며 괜찮냐고 몇 번이고 물어봤지만 괜찮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내가 간호사로 일을 하면서 혹여나 생길까 가장 두려웠던 부분 중 하나였는데, 그게 실제로 일어나니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바닥을 쳤다. 내가 간호사를 해도 되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도 백만 번 들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재수술에 대한 설명을 우리 수간호사가 가서 했을 때,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또 괜찮다고 너무 사람 좋게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 가족 진짜 뭔가 싶었다. 

환자는 수술 전 적어도 3~4시간 금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오후 근무자들에게 인계를 줄 때에는 환자가 아직 방안에서 수술방에 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미안함을 가득 안고 오늘 어떤 상황이 있었고 왜 이 환자가 재 수술을 받으러 가는지 환자 앞에서 인계를 했고, 다들 내 마음을 아는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인계를 듣던 중이었다. 환자의 어머니가 나를 보고는, "근데, 너는 괜찮니?" 라고 물어봤다. 이 와중에 나를 챙기는 환자 보호자의 마음씨에 너무 놀라고 감사해 "사실 안괜찮아요. 저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난 게 너무너무 죄송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환자의 어머니가 일어나서 말했다.

"그러지 마, 우린 괜찮아. 이것도 다 사람이 하는 일 아니겠니. 너도 몰랐고 나도 몰랐고 얘(환자)도 몰랐는데 어떡하겠니. 아무 일 없을 거야. 괜찮아!"

하며 너무 마음쓰지말라고 나를 안아주며 토닥거려 줬다. 인계하다가 환자 앞에서 운 건 이 날이 처음이었다. 그 날 퇴근 이후 스케쥴이 없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을 다시 볼 기회는 없었지만, 동료 간호사들이 나에게 에이든이 수술 후 잘 퇴원했다고 전해주었다. 

사실이 글을 쓰는 지금도 울컥하는데, 그 주 나는 '내가 저 환자라면, 아니 내가 그 환자의 부모였다면- 이 상황에서 나를 단 한 번도 원망하지 않고, 아니 속으로는 원망했더라도 그 감정을 전혀 보이지 않고 나를 위로해 줄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정말 많이 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미래의 나는 그렇게 행동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뀔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내가 살면서 얼마나 사회에 환원을 해야 이 사람들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을까? 그 날 내가 느꼈던 감정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값지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경험이었던 것 같다. 

사실 이 날의 기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며 퇴근을 하고, 친구와 산책 약속이 있어 호숫가를 한 바퀴 돌고 저녁을 먹으러 집에 가던 길이었다. 호숫가에서 집에 가려면 큰 대교를 건너야 하는데, 다리로 진입하던 순간 차가 무언가를 밟는 소리가 났고 이후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최대한 안전한 곳에 빨리 주차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호수 근처 외진 곳에 주차를 했다. 주차를 하자마자 타이어를 확인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왼쪽 앞바퀴가 제대로 터져있었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덜컹거리는 차 소리가 얼마나 컸으면 주변에 있던 아주머니 두 분이 와서 괜찮냐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 처리하는지 아냐고 물어봤다. 나는 이미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하는 상황이었기에 괜찮다고 말씀드렸더니 자기들은 퀸즈랜드에서 왔는데, 차 소리를 듣고 혹시나 도와줄게 있나 확인차 왔다고 하시더라.

이것만으로도 너무 감동이었는데, 얼마 안 있다가 낚시를 하던 호주 청년 두 명이 너무 캐주얼하게 와서 타이어 터졌냐고, 괜찮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또 남자친구를 기다리고 있다고 대답 했는데, spare 타이어가 있으면 자기들이 갈아줄 수 있다고, 굳이 그에게 오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자기들이 도와줘도 괜찮겠냐고 해서 내가 그래주면 고맙겠다고 하니 익숙한 듯이 내 차 트렁크에 있는 비상용 타이어를 꺼내 앞바퀴를 떼고 새 타이어를 넣기 시작했다. 이게 또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놀랍고 어이가 없었지만 오늘 액땜이란 액땜은 다 하는 대신 해결책까지 주시는 건가 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타이어가 다 갈아지는 데까지는 2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사례를 하겠다고 하니 그것도 거절하고 잘 집에 가더라. 어색해서 말을 중간중간 못 걸었는데(보통 백인 남자한테 말 잘 못 걸음) 이 외국인 여자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그들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열심히 도와주는 친구들을 보고 울지말라고 하늘에서 천사들을 이렇게 내려주나 싶었던 날이었다

사람이 친절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병원에서 일하면서 많이 깨닫게 되었는데, 첫째는 경제적인 풍요이고 둘째는 지속된 자기 계발이었다. 부와 지능이 친절과 비례하지는 않지만, 직간접적인 영향을 정말 많이 끼친다는 것을 많은 환자들을 보면서 느낀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부를 쌓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마음 다스리는 연습을 꾸준히 한 사람들이 그 나이대 갖는 품위와 친절을 갖기 쉬운 위치가 된다는 것 - 그래서 나도 그러기 위해 참 많이 노력해야겠다! 하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다. 

사람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꼴보기 싫다가도, 결국 위안을 주는 것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기에, 누구나 다 자신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타적인 행동을 실천하려는 사람들 덕분에 이 세상이 살아지는구나. 나도 나중에는 꼭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오늘 느꼈던 내 감정을 다른 사람도 또 느낄 수 있게, 그래서 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이 순환할 수 있게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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